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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앞두고 검찰이 압수수색, 심재철 의원실 무슨 일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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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2호 07면

검찰이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7층에 있는 자유한국당 심재철 의원(왼쪽) 사무실을 압수수색 했다. 심 의원이 사무실을 나서고 있다. [오종택 기자]

검찰이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7층에 있는 자유한국당 심재철 의원(왼쪽) 사무실을 압수수색 했다. 심 의원이 사무실을 나서고 있다. [오종택 기자]

21일 오전 9시45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7층.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실에 서울 중앙지검 형사4부 소속 검사 등 10명이 들이닥쳤다. “정부의 비공개 예산정보 무단 열람 및 유출 혐의”라고 적힌 영장을 보여주고는 곧바로 컴퓨터와 서류를 뒤지기 시작했다. 비슷한 시각, 심 의원실 보좌진 3명의 주거지와 한국재정정보원 사무실 등도 압수수색했다. 심 의원 개인집무실은 포함되지 않았다.

검찰 ‘예산정보 불법 유출’ 수사 #의원실 “기재부 인가받고 정상 접속” #발칵 뒤집힌 한국당 강력한 반발 #김성태 “정치검찰에 국회 무너져” #심재철 “순방 때 수행원 사적 사용” #청와대선 “자숙” 이례적 실명 비판

한국당은 발칵 뒤집혔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그것도 국회부의장까지 한 당 5선 중진에 대한 강제수사였기 때문이다. 더욱이 문재인 정부를 대상으로 사실상 첫 국정감사를 19일 남겨놓은 시점이었다.

서울역 귀성 인사를 가던 김성태 원내대표은 급히 차를 국회로 돌렸다. 당 소속 의원 112명에게는 ‘지금 즉시 검찰 압수수색이 강행되고 있는 심재철 의원실로 모여주시길 바란다’는 긴급 문자를 보냈다. 김 원내대표는 심 의원실에서 박상기 법무부 장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장관, 이건 너무한 것 아니냐.” 성난 목소리가 의원실 밖까지 들렸다. 곧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와 김용태 사무총장도 도착했다. 이들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례적인 일로, 이런 이유가 뭘까 낱낱이 밝혀내겠다”(김병준), “국회가 정치검찰에 무너지고 있다”(김성태), “청와대와 검찰이 천기누설을 두려워하는 것”(김용태)이라고 강하게 성토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① 심 의원실, 업무추진비 내역 입수

지난달 31일 심 의원실이 한국재정정보원이 운영하는 디지털예산회계시스템(디브레인)을 분석해 “4개 정부부처가 10년간 특수활동비 17억원을 편법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그러곤 이달 초부터 청와대 비서실, 국무총리실, 기획재정부, 대법원, 헌법재판소, 법무부 등 30여 개 정부 기관의 47만 건에 이르는 행정정보를 열람 또는 내려받았다.

이 과정에서 당국이 이를 알게 됐다. 통상 수준을 넘는 디브레인 접근 때문이었다. 서로 간의 공방이 있었고, 기재부에선 관련 자료를 돌려달라는 공문을 보냈지만 심 의원은 거부했다. 급기야 기재부는 17일 “심 의원실이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예산정보 수십만 건을 내려받아 불법 유출했다”며 심 의원 보좌진을 정보통신망법 및 전자정부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이에 맞서 심 의원실은 “기재부 인가를 통해 정상적으로 시스템에 접속해 자료 검색과 열람을 하는 과정에서 어떠한 불법성도 없었다”며 19일 김동연 경제부총리 등을 무고 혐의로 맞고소했다.

② 프로그램 오류 vs 해킹

자료 확보 경위에 대해 심 의원실은 정식으로 발급받은 아이디로 접속하던 중 ‘백스페이스’ 키를 눌렀더니 자료가 뜬 것이고, 재정정보원 관계자도 프로그램 오류를 인정했다고 주장한다. 재정정보원의 13일자 자체 분석 보고서란 것도 공개했다. “백스페이스 키를 연속 입력 시 본인 권한이 아닌 타 사용자 권한의 보고서 조회가 가능하다. 해당 버그(오류) 발생 시에도 권한이 없는 통계에 접근할 수 없도록 조치를 완료했다”는 내용이다. 심 의원실은 최근 취재진을 불러 조회 과정을 재연하기도 했다.

기재부 등은 이에 대해 “해당 보고서엔 ‘심 의원실 보좌진이 인가되지 않은 시스템 경로를 이용해 조회 권한이 부여되지 않은 데이터를 취득한 것으로 추정’이라는 등 심 의원실 행위의 불법성을 처음부터 명확하게 제기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③ 검찰의 압수수색

기재부의 고발로부터 나흘 만에 검찰의 압수수색이 이뤄진 데 대해 한국당은 정치적 의도라고 규정한다. 국감을 앞둔 시점에 야당 의원들에 대한 재갈 물리기란 것이다. 여기에다 지난 5일 정부의 신규 주택공급 후보지를 누설한 신창현 더불어민주당 의원과의 형평성 문제도 있다. 한국당이 지난주 신 의원을 고발했으나 검찰이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은 상태여서다. 윤영석 한국당 수석대변인은 “명백한 국가기밀 유출행위는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은 채 야당 의원의 정상적인 의정활동만 탄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공교롭게도 심재철 의원실(의원회관 714호)과 신창현 의원실(723호)은 가깝다.

민주당과 서울중앙지검은 “신속하게 사건 실체를 규명하기 위함”이라고 반박했다. 검찰은 강제수사 착수에 앞서 지난

19∼20일 기재부 및 재정정보원 관계자들을 차례로 불러 고발인 조사를 벌였다.

④ “해외 순방 때 업무비 사적 사용”

정치권에선 심 의원실이 확보한 47만 건의 행정정보에 주목하고 있다. 당국의 전격성이 자료의 폭발력 때문이 아니냐는 것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특수활동비 사용 양태를 ‘적폐’로 몰아 단죄했던 현 정부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있다면 타격일 수 있다는 취지에서다.

심재철 의원이 그 가능성을 내비쳤다. 그는 “대통령의 해외 순방 때 수행한 사람들이 업무추진비 예산을 사적으로 사용했다”며 “수행원들이 한방병원에서 썼다고 얘기해 확인했더니 그 호텔에는 한방병원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또 의원실 앞에서도 “의원실 압수수색은 예산 사용 내역을 틀어막기 위한 속셈”이라며 “청와대를 비롯한 주요 부처가 예산 사용 지침을 어기고, 사용이 금지된 곳에서 사적으로 유용한 사례가 무수히 발견됐다”고 주장했다. 또 “어떤 외압에도 흔들림없이 정부의 불법 예산 사용 내역을 밝혀 나가겠다”면서 관련 서류들을 들어보이기도 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 대변인이 이례적으로 실명 비판했다. “아이들 손버릇이 나쁘면 부모가 회초리를 들어서 따끔하게 혼내는 법”이란 표현까지 동원했다. 김의겸 대변인은 이어 “심 의원은 불법적으로 얻은 정보를 마음대로 뒤틀고 거짓으로 포장해 언론에 제공하고 있다”며 “자숙해 달라. 5선의 의원으로서, 국회의 어른으로서 후배 정치인들에게 본보기를 보여 달라”고 했다.

현일훈·한영익 기자 hyun.il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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