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엄청난 김정은 편지 받아” 북한이 영변 핵사찰 수용 밝혔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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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부가 남북 정상회담 결과에 대해 반색하며 즉각적인 대북 협상을 선언함에 따라 백악관을 설득하기 위한 북한의 물밑 ‘+α’ 카드가 있었다는 관측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19일 오후(현지시간) 발표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간 정상회담 결과에 붙여’란 제목의 성명에서 “평양에서의 성공적 회담 결과에 축하의 말을 전한다”며 “미국은 북·미 관계를 전환하기 위한 협상에 즉각 참여할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평양선언에 사찰 언급 없는데도 #트럼프·폼페이오 “사찰” 당연시 #북, 미국 설득용 ‘+α’ 있었던 듯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김 위원장을 만날 수 있다는 답변까지 내놨다. 그간 미국 정부가 남북 간 접촉 움직임에 대해 “남북관계는 비핵화 진전과 같이 가야 한다”는 건조한 원칙적 입장만을 밝혀 왔던 것과 분위기가 바뀌었다.

이와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이 공동선언이 발표된 지 1시간여 만에 트위터를 통해 “최종 협상에 필요한 ‘핵 사찰(Nuclear inspections)’을 허용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힌 게 ‘+α’의 단서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폼페이오 장관도 19일 성명에서 “우리는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미국과 IAEA 사찰단의 참관 아래 영변의 모든 시설을 영구히 해체하는 것을 포함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싱가포르 공동성명을 재확인한 것을 환영한다”고 강조했다. ‘사찰’은 남북의 평양 공동선언에는 없는 내용이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남북 정상이 공식 발표된 내용 외에도 더 많은 비핵화 관련 논의를 했다”고 한, 이른바 ‘+α’의 메시지 중 하나는 ‘영변 사찰 수용’이었다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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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기자들에게 “나는 김정은(북한 국무위원장)으로부터 엄청난 서한을 받았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그것은 3일 전(미국시간 16일)에 배달됐다. 우리는 북한과 관련해 엄청난 진전을 이루고 있다”고 거듭 강조한 점은 의미심장하다.  즉 미 정부는 이미 북한 측의 친서, 혹은 한국을 통해 ‘영변 사찰 허용’ 의사를 전달받았고, 이를 돌파구 삼아 북·미 협상을 재개하기로 방침을 굳히고 있었다는 관측이 가능하다. 이날 성명에서 “이런(풍계리와 영변 핵 사찰단 수용) 중요한 약속들에 기반해 미국은 협상에 즉각 나설 것”이라고 ‘전제조건’을 깐 것도 같은 맥락이다.

폼페이오 장관의 성명에서 또 눈여겨볼 대목은 북한의 비핵화 시한을 2021년 1월, 즉 트럼프 대통령의 첫 임기 내로 못 박은 점이다. 이 또한 ‘평양공동선언’에는 명기돼 있지 않다.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등 남측 특사단의 입을 통해 김 위원장의 ‘트럼프 임기 내 비핵화 의지’가 전해지긴 했지만 미 정부가 이를 ‘북한의 약속’으로 공식 명기화한 것은 처음이다. 폼페이오 장관은 “2021년 1월까지 완성될 북한의 신속한 비핵화 과정을 통해 북·미 관계를 변화시키는 한편, 한반도의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협상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폼페이오 장관은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우리는 또 하나의 진전을 이뤘으며 그걸 통해 북핵 프로그램의 한 요소(element)에 대한 검증(verification)을 현지에서 이뤄낼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했다. 또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관계는 매우 좋으며, 보도되고 있지는  않지만 나 또한 내 카운터파트와 계속 얘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오는 24일 뉴욕에서의 한·미 정상회담에선 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한의 ‘+α’에 대해 보다 직접적으로 설명하고, 반대로 북한이 공동선언에 언급한 ‘(미국의) 상응하는 조치’에 대한 논의가 집중적으로 이뤄질 전망이다.

방북 일정을 마친 뒤 20일 오후 귀국한 문 대통령은 대국민 보고에서 “(김 위원장과) 논의한 내용 가운데 합의문에 담지 않은 그런 내용들도 있다”며 “방미하면 미국 측에 상세한 내용을 전해줄 그런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워싱턴=김현기 특파원 luc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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