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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쌍용차 살아나야 ‘119명 복직 합의’도 빛 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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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문희철 산업부 기자

문희철 산업부 기자

쌍용차 노노사정(勞勞使政) 대표가 14일 합의문을 발표하면서 9년간 이어진 쌍용차 해고 사태가 봉합 수순을 밟고 있다. 쌍용차는 해고자(119명) 중 71명(60%)을 연말까지, 48명(40%)을 내년 상반기까지 단계적으로 채용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뜨거운 축하 메시지’를 보냈고, 이낙연 국무총리는 ‘결단에 감사한다’는 글을 남겼다.

이전 노사합의 깨뜨린 합의 논란 #희망퇴직자·신입사원 채용 미뤄 #‘투쟁하면 된다’ 공식 확산 우려

해고자 복직은 원칙적으로 축하할 일이다. 하지만 과정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대통령 한 마디에 원칙이 깨졌기 때문이다. 일단 이번 합의는 기존에 두 차례 노사가 합의한 사항을 깨뜨렸다. 쌍용차 노사는 2009년 무급휴직·희망퇴직에 합의했는데, 이번에 복직이 결정된 해고자는 당시 노사합의를 거부한 이들이다.

쌍용차 노사는 또 2015년 경영상황이 호전할 경우 단계적으로 해고자(30%)와 희망퇴직자(30%), 신입사원(40%)을 약속한 비율대로 충원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번 합의에 따라 신입사원 채용은 원칙대로 하지 못하게 됐다.

해고자가 복직하는 조건으로 금속노조 쌍용차지부는 ‘집회·농성·소송을 중단하고, 펼침막·시설물을 철거한다’ 고 약속했다. 이미 2015년 합의했지만 지키지 않았던 내용들이다. 당시 데모·불매운동 등 회사에 위해한 행위를 하지 않기로 약속했던 금속노조 쌍용차지부는 대한문 앞에 분향소를 마련하거나 농성·불매운동을 점진적으로 실시했다.

최종식 쌍용차 사장(오른쪽)이 13일 김득중 금속 노조 쌍용차 지부장과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종식 쌍용차 사장(오른쪽)이 13일 김득중 금속 노조 쌍용차 지부장과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원칙을 포기한 건 사측도 마찬가지다. 그간 쌍용차는 누누이 ‘흑자 전환이 우선’이라는 원칙을 밝혔다. 신차출시→판매확대→공장 가동률 증가→흑자전환 단계에 올라서면, 약속한 비율대로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원칙이다.

하지만 최종식 쌍용차 사장은 원칙 대신 사회적 타협을 택했다. 인도 마힌드라가 인수한 2010년 이후 쌍용차는 2016년을 제외하곤 매년 적자였다. 경영 위기가 시작된 2008년부터 올해 1분기까지 쌍용차의 누적 영업손실도 1조71억원에 달한다. 최 사장의 결정이 성공한다면 기업인은 경영상 판단보다 정치적 판단을 우선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을 테고, 실패한다면 재직 중인 근로자 4878명의 일자리가 위태로워진다.

원칙 파괴는 불가피하게 선의의 피해자를 양산한다. 묵묵히 약속을 지키며 복직 시점을 기다리던 일부 희망퇴직자는 복직 시점이 미뤄질 수밖에 없다. ‘투쟁해야 복직한다’는 공식이 확산하면 더 큰 사회적 혼란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희망 퇴직자(1900여명)는 해고자(165명)보다 10배 이상 많다. 또 아직 뽑히지 않아 목소리조차 낼 수 없는 미래의 신입사원들은 여전히 청년실업자로 남게 됐다.

이제 쌍용차는 내년 상반기 출시할 코란도C 후속 모델에 사운을 걸게 됐다. 신차가 잘 팔려야 가동률이 60%에 불과한 쌍용차 평택공장도 흑자 전환을 도모할 수 있다. 119명의 복직자도 자신의 손으로 쌍용차를 살리겠다는 각오로 회사를 살리는 데 기여해야 한다. 그래야 이번 합의가 빛을 발할 것이다.

급등하는 인건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향후 관계부처와 ‘쌍용차 상생발전위원회’를 설립할 예정이다. 해고자 복직 시 사측 부담을 경감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인건비 부담으로 고통받는 다른 기업과 형평성을 유지하지 못한다면 특혜 시비로 번질 수도 있다. 모두 원칙을 포기하면서 벌어진 미래의 비용이다.

문희철 산업부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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