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풍 가볼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79세 할머니의 졸업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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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대구시교육청에서 열린 대구내일학교 입학식. 대구시교육청이 준비한 가방. 백경서 기자

지난 13일 대구시교육청에서 열린 대구내일학교 입학식. 대구시교육청이 준비한 가방. 백경서 기자

"남편 먼저 떠난 뒤에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은행에 가도 예금을 할 줄 모르니 지인에게 대신 부탁했다가 사기도 당했습니다."

한수화(79·대구 중구) 할머니는 5남 1녀의 장녀로 태어났다. 부모님은 한 할머니가 16살 되던 해에 돌아가셨다. 처음에는 가난해서 학교에 가지 못했지만, 나중에는 가장으로서 생계를 책임지느라 갈 수가 없었다. 한 할머니는 빗 만드는 공장에 다니며 다섯 남동생을 키웠다. 이후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면서 집안 사정은 나아졌지만, 글을 읽고 쓸 줄 몰랐기에 모든 걸 남편에 의지했다. 한 할머니는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했지만, 아들이 군대 가서 보낸 편지도 읽지 못해 남편이 대신 읽어줬다"고 회상했다.

대구내일학교 5회 중등과정 졸업생인 한수화(79) 할머니. 백경서 기자

대구내일학교 5회 중등과정 졸업생인 한수화(79) 할머니. 백경서 기자

그는 "14년 전 남편이 고혈압으로 세상을 떠난 뒤부터 막막했다"고 했다.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삶의 의지도 없었다. 경로당 등 모임에 가도 까막눈인 사실을 들킬까 두려워 어울리지 못했다. 그런 한 할머니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 건 대구내일학교였다.

늦깎이 학생을 위한 '대구내일학교' 

한 할머니가 다닌 대구내일학교는 대구시교육청에서 전국 최초 직영으로 운영하는 문해교육프로그램이다. 배움의 기회를 놓친 성인을 위해 2011년 마련된 학교다. 2015년 기준 대구지역 성인인구의 12.9%(24만9968명)가 학령기에 배움의 기회를 놓친 초·중학교 학력 미취득자로 집계됐다.

지난 13일 오후 대구시교육청 행복관에서 대구내일학교 졸업식과 힙학식이 열렸다. 학생들의 기념 메시지. 백경서 기자

지난 13일 오후 대구시교육청 행복관에서 대구내일학교 졸업식과 힙학식이 열렸다. 학생들의 기념 메시지. 백경서 기자

초등 1년 과정, 중등 2년 과정으로 수업이 진행된다. 초등과정 첫 졸업식에서 60명이 졸업한 뒤 입소문을 탔다. 2회에 150명이 졸업하고 학생들의 소망에 힘입어 2013년 중등과정이 개설됐다. 현재까지 초등과정 749명과 중학과정 381명 총 1130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국어·사회·수학·영어·컴퓨터 등이 주요 수업 과목이다. 수업은 실제 학교에서 한다. 초등과정 주간반은 명덕·달성·성서·금포초에서, 야간반은 중앙도서관에서 수업이 이루어진다. 중등과정은 제일중에서 재학생 101명을 포함해 총 241명이 학업을 함께 한다. 실제 학생들과 함께 교문으로 등교하면서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 것 같다”는 게 어르신들의 말이다.

지난 13일 오후 대구시교육청 행복관에서 대구내일학교 졸업식과 힙학식이 열렸다. 백경서 기자

지난 13일 오후 대구시교육청 행복관에서 대구내일학교 졸업식과 힙학식이 열렸다. 백경서 기자

13일 오후 2시 대구시교육청 행복관에서 열린 졸업식에서 212명(초 102명, 중 110명)이 졸업했다. 30대부터 최고령자 87세까지 연령대는 다양했다. 초등과정 졸업자 평균연령이 67세, 중학과정 최고령 졸업자 평균연령이 66세다. 졸업식 전 만난 한 할머니는 “내가 소풍을 가보리라곤 상상하지 못했다”며 “아들 도시락만 싸봤지, 나를 위해 김밥을 싸서 친구들과 놀러가니 얼마나 즐거웠던지”라고 눈시울을 붉혔다.

자녀와 손주들도 참석해 졸업을 축하했다. 충남 공주시에서 어머니의 졸업을 축하하기 위해 왔다는 손기종(41)씨는 “이런 말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어머니가 정말 대견스럽다”고 웃었다.

지원 경쟁률 1:1 넘어…진단평가 쳐서 입학  

같은 날 입학식도 열렸다. 대구내일학교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진단평가를 쳐야 한다. 대구시교육청에 따르면 지난달 16∼27일 올해 신입생을 모집한 결과 초등과정은 150명 모집(주간 125명·야간 25명)에 모두 157명이 지원했다. 120명을 모집하는 중등과정에는 160명이 지원했다. 초·중등과정 모두 지원자가 모집정원을 넘었다.

지난 13일 오후 대구시교육청 행복관에서 대구내일학교 졸업식과 힙학식이 열렸다. 강은희 대구교육감이 입학생 할머니에게 기념 가방을 메도록 돕고 있다. 백경서 기자

지난 13일 오후 대구시교육청 행복관에서 대구내일학교 졸업식과 힙학식이 열렸다. 강은희 대구교육감이 입학생 할머니에게 기념 가방을 메도록 돕고 있다. 백경서 기자

초등과정 입학생 김영식(75세) 할아버지는 "초등 1학년 때 한국전쟁으로 인해 피난을 가는 바람에 학교를 다니지 못했다. 어느 날 초등학교 교문에서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나오는 걸 보고 경비실에 문의해 내일학교를 알게 됐다. 입학할 날을 기다리면서 만감이 교차했다"고 말했다.

이재윤(64) 할머니도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이 중학교 갈 형편 안 되는 학생들은 옆으로 빠져서 따로 공부하라고 했다. 이후로 부끄러워서 학교에 가지 못했다. 이곳에 온 뒤 제2의 인생을 살게 된 것 같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대구=백경서 기자 baek.kyungse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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