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혐오 반대”vs.“국민 안전이 먼저”…종로서 난민찬반 맞불집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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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거 없는 난민혐오 반대한다”  “국민이 먼저, 불법체류자 추방”

16일 종각역, 마주보고 난민 찬반 맞불집회 #빗속에서도 각각 300여명 모여 상호 비판 #한때 종각역 일대 점령 대치, 교통 통제 #민노총·국회의원도 단상 등장하며 쟁점화

주말인 16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종각역에서는 산발적으로 비가 내리는 가운데 난민 맞불집회가 열렸다.
4번 출구 보신각 앞에서는 난민찬성 집회가, 3번 출구 종로타워 앞에서는 난민반대 집회가 각각 동시에 진행됐다. 찬성집회에서는 “문제는 난민이 아니라 난민혐오”라며 난민혐오 문화를 조장하는 세력을 비판했다. 반대 집회 측에서는 “가짜난민과 불법체류자를 즉각 추방하라”고 외쳤다.

◇“비이성적 난민혐오가 문제”  

이날 난민인권센터·노동자연대 등이 주최한 '난민과 함께하는 행동의 날' 집회가 예정된 오후가 되자 우비를 입거나 우산을 쓴 참가자들이 삼삼오오 보신각 앞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주최 측 추산 약 300명의 참가자들은 "난민 혐오세력들은 난민에 대한 거짓주장과 혐오선동을 즉각 중단하라"며 "난민에 대한 초기생활지원금은 1인당 43만원에 불과하고 6개월간 받을 수 있는데, 이마저 예산부족으로 대상자의 3.2%밖에 받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날 집회에 참석한 아프리카 기니 출신의 A씨는 "여러가지 복잡한 상황으로 인해 8개월 뒤에 한국에서 쫓겨나게 생겼다"며 "한국에 머물며 살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또 다른 참가자 정모(21·여) 양은 “난민이 한국 노동자들의 권리를 빼앗을 것이란 주장에는 근거가 없다고 생각한다”며 “자신들의 터전을 버리고 한국으로 온 사람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들이 바뀌어야 한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16일 오후 서울 보신각 앞에서 난민인권센터 등 주최로 열린 '난민과 함께하는 행동의 날'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난민 혐오를 멈춰라' 메세지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다. [뉴시스]

16일 오후 서울 보신각 앞에서 난민인권센터 등 주최로 열린 '난민과 함께하는 행동의 날'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난민 혐오를 멈춰라' 메세지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다. [뉴시스]

한때 법무부 소속 직원들의 등장으로 집회가 잠시 중단되기도 했다. 진행자는 "법무부 출입국사무소 소속 직원 2명이 집회 현장에 나타나 집회에 참가한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왜 이곳에 왔는지 등을 물어보고 다니고 있다"며 "외국인들은 절대 이에 응답하지 말라"고 주문했다. 그는 "이는 용납될 수 없는 행위이며 즉각 집회장에서 나가지 않을 경우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난민법, 불법체류자를 합법체류자로 둔갑”

같은 시각 보신각 맞은편인 종각역 3번출구 종로타워 앞에서는 난민반대를 외치는 소위 ‘맞불집회’가 열렸다. 주최 측인 난민대책국민행동(이하 국민행동) 추산 약 350명이 모였다. 흰색 우비를 입은 참가자들은 '사퇴하라 박상기' '가짜난민 OUT'이 적힌 피켓을 들고 "불법체류자 즉각 추방하라”라는 구호를 찬성시위대를 겨냥해 외치기도 했다. 집회장 한켠에서는 '난민법 폐지 서명운동'이 진행됐다.

이날 난민반대 집회에 참석한 공장 노동자 남모(25)씨는 "나의 세금이 노인들과 어려움에 처한 아이들, 국가유공자 등을 위해 쓰이는 것에는 적극 찬성하지만 난민에게 매달 43만원에 제공되는 것에는 반대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참석자인 고등학생 김모(17)양은 "난민으로 인정받으려는 분들은 대부분 여성에 대한 인권의식이 우리와 다른 나라에서 오신 분들이 많다"며 "합법적인 절차 없이 이들을 받아들이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난민대책 국민행동'이 16일 서울 종로구 종로타워 앞에서 제6차 난민 반대집회를 열고 행진하고 있다. [연합뉴스]

'난민대책 국민행동'이 16일 서울 종로구 종로타워 앞에서 제6차 난민 반대집회를 열고 행진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주난민대책도민연대 이향 사무국장은 이날 선언문을 낭독하며 "제주는 아직도 올레길을 혼자 걸을 수 없고 밤에 외출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며 "국가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묻는다"고 비판했다. 이어 "가짜난민을 인도주의라는 이름으로 우회적으로 수용하는 난민법을 즉각 폐지하고, 예멘 가짜 난민들을 모두 추방하라"고 주장했다.

◇종각역 점령·대치, 인권위·청와대로 각각 행진 

이날 오후 4시쯤에는 국민행동이 종각역 일대를 점령하고 난민찬성 집회 측과 약 10분간 대치하면서 종각역에서 종로2가 사거리 방향으로의 교통이 잠시 통제되기도 했다. 이들이 도로를 점거하고 난민찬성 집회장을 향해 "불법 가짜 난민 추방" "국민안전 최우선" 등을 외쳤고, 일부 참가자들 사이에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국민행동은 지난 13일 이집트 난민 단식농성장에 방문한 최은애 국가인권위원장에 대한 항의 차원에서 이날 중구의 인권위까지 행진 시위를 이어갔다.

난민과 함께하는 행동의 날 측도 4시30분쯤 청와대로 행진을 시작했다. 이들은 "인도적 체류는 결국 난민지위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하며 정부에 ▶난민법 개정 반대 ▶난민심사 조작사건 진상조사 ▶무사증입국협약국가 축소 반대 등을 요구했다.

◇민주노총·이언주 의원 등장에 정치 쟁점화 우려도 

이날 난민과 함께하는 행동의 날 주최 측으로 참석한 봉혜영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단상에 올라 “난민혐오세력은 권력과 자본가를 향한 분노의 마음을 소수자에게 돌림으로써 마음의 위안을 갖고자 하는 것"이라며 "난민 탄압과 배제는 투쟁하는 노동자에 대한 탄압과 배제의 또 다른 모습일 뿐이다"고 연설했다.

바른미래당 이언주 의원은 반대 집회 단상에 올라 "다른 국가들은 노동자들이 난민문제에 대해 먼저 우려하며 대책을 고민하는데, 우리나라의 노동단체는 왜 우리 노동자들의 입장을 대변하지 않는가"라며 "민주노총은 더이상 노동자 단체가 아니라 정치집단"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한편, 앞서 법무부 제주출입국ㆍ외국인청은 예멘 난민 신청자 23명의 인도적 체류를 허가했다.
인도적 체류는 난민에는 해당되진 않지만 송환될 경우 생명이나 신체의 자유를 현저히 침해당할 수 있다고 인정할 만한 합리적인 근거가 있는 경우 허용한다. 이들에게 부여한 체류기한은 1년이며 앞으로 예멘에 돌아갈 수 있을 정도로 상황이 좋아지면 체류허가가 취소되거나 연장되지 않는다.
법무부는 나머지 예멘 난민신청자에 대해서는 10월 안에 심사를 마치고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김다영 기자 kim.d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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