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강찬호의 시선

청와대의 ‘야당 평양 초청 스토킹’ 실패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2면

강찬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강찬호 논설위원

강찬호 논설위원

지난달 16일 청와대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5당 원내대표의 오찬회동. 문 대통령이 힘주어 말한 키워드는 두가지였다.

문 대통령 필두로 4주 만에 4차례 초청, 끝내 불발 #야 “밑도 끝도 없이 ‘가 달라’ 매달리니 누가 받나”

“평양서 열릴 3차 남북정상회담에 함께 가시지요.” “판문점 선언 비준에 동의해 주십시오” 문 대통령은 “국회에서 그래주면 평양에서 (내가 협상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거듭거듭 청을 넣었다. 오찬이 끝난 뒤 대화 내용을 정리하느라 남은 5당 원내대표들이 “대통령님은 가시라”고 했는데도 문 대통령은 자리를 지키며 “비준해달라” “북한 가자”는 말을 되풀이했다고 한다.

며칠 뒤 5당 원내대표 중 빅3인 홍영표(민주)·김성태(한국)·김관영(바른미래)이 모였다. 김성태가 입을 열었다. “여야 원내대표들이 대통령 수행단인 양 따라갈 일인가. 부적절하다.” 김관영도 이에 동조했다. 결국 반대 2, 찬성 1(홍영표)의 스코어로 문 대통령의 오퍼는 무산됐다.

하지만 청와대는 집요했다. 정상회담 일정(18~20일)이 발표된 다음날인 7일, 홍영표를 시켜 김성태와 김관영에게 재차 동반 방북을 요청했다. 김성태는 단칼에 거절했다. 김관영도 “어렵다”고 했다. 그는 전날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판문점 선언 지지 결의안 채택을 제안한다”고 했다가 당내에서 반발이 쏟아지며 홍역을 치른 터였다.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그러자 청와대는 타깃을 바꿨다. 김병준·손학규 등 한국당·바른미래당 대표들을 정조준한 것이다. 그런데 직접 접촉하는 대신 문희상 국회의장을 통해 간접적으로 방북을 요청했다. 패착이었다. “임종석(대통령 비서실장)이가 직접 청해도 들어줄까 말까인데 야당 대표를 뭐로 아나”는 반응이 양당에서 튀어나왔다. 서열상 아래인 원내대표들에게 두 번이나 청을 넣었다가 거절당하자 대표들을 ‘대타’로 삼은 모양새도 부아를 돋웠다. 게다가 청와대가 아군으로 여긴 메신저 문희상 의장부터 방북에 소극적이었다. 그는 국회의장단의 방북을 청한 청와대 관계자에게 “국회의장이 대통령 따라 (북한에) 가는 건 좀 그렇다”는 뜻을 전했다. 에둘러 거절한 것이었다.

그러나 청와대는 막무가내였다. 문 의장이 두 부의장(이주영·주승용)과 만나 입장을 조율하기도 전인 10일 한낮, 임종석 실장이 청와대 춘추관에서 전격적으로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의장단과 5당 대표 등 9명을 평양 정상회담에 공개 초청해버렸다. 야당은 격앙했다. 문 의장도 착잡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이날 오전 자신을 찾은 여야 원내대표들에게 푸념했다. “국회의장단과 당 대표들이 대통령 따라가는 모양새가 적절하지 않다고 보지만 (청와대가) 이렇게 밀어붙이니 곤란하다. 대통령이 자꾸 집착하니 어떡해야 하나.”

청와대의 ‘4수’ 연대기

청와대의 ‘4수’ 연대기

이런 마당이니 임종석의 회견 직후 열린 문 의장과 두 부의장의 회의는 일사천리로 끝났다. 두 부의장은 이구동성으로 “안 간다”고 했다. 한국당 출신인 이주영이야 애초부터 거절 의사가 분명했지만 비른미래당 출신인 주승용은 방북 의사가 없지 않았다. 하지만 청와대의 안하무인격 행보에 야권의 반발이 거세지자 마음을 돌린 것이다. 북한 갈 마음이 없었던 문 의장에겐 단비나 다름없었다. 두 부의장의 거절을 이유로 “나도 못 간다”고 청와대에 통보해버렸다.

같은 집안 식구였던 문 의장에게마저 거절당한 청와대는 재차 승부수를 띄웠다. 한병도 정무수석이 11일 야당 지도부를 찾아 동반 방북을 청한 것이다. 거부할 게 뻔한 한국당엔 시늉만 하고,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에게 화력을 집중하는 모양새였다. 그러나 역시 단칼에 거절당했다. 김관영 원내대표는 “(손 대표가) 북한 가서 할 역할이 뭔지 전혀 설명이 없고 정보 공유도 하나 없이 ‘가 주시죠’만 연발하더라. 이렇게 야당을 무시하는 청와대 오퍼를 누가 받을 수 있나”고 했다.

청와대가 ‘스토커’가 돼버린 이유는 뭘까. 김정은 위원장이 우리 측에 판문점 선언 비준과 야당 동반 방북을 강하게 요청한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노무현 정부 때 합의된 10.4 공동성명이 이명박 정부 출범 뒤 휴지가 되면서 북한은 큰 낭패를 봤다. 대남교섭 책임 부서인 통일전선부는 쑥대밭이 됐다. 그걸 아는 김정은이 통전부의 건의를 받아들여 “판문점 선언은 반드시 국회 비준을 받게 하고 야당도 방북에 동행시켜 정권이 바뀌어도 선언의 효력이 유지되게 해달라”고 요구했다는 것이다. 하태경 의원은 “남북 합의는 지속성을 가져야한다는  북한의 요구는 틀린 게 아니다”면서도 “그러려면 청와대가 야당과 소통을 해왔어야 하는데 전혀 하지 않다가 회담 직전 묻지마식으로 밀어붙이니 될 일도 안 되는 것”이라 했다. 필자의 생각도 같다.

강찬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