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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시신에 심폐소생술하는 응급실 의사, 왜 그럴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더,오래] 조용수의 코드 클리어(1) 

코드 클리어는 응급실에서 응급상황이 종료된 상태를 말한다. 의사는 누구보다 많은 죽음을 지켜본다. 삶과 죽음이 소용돌이치는 응급실과 중환자실에서는 특히 그렇다. 10년 가까이, 셀 수 없이 많은 환자의 생과 사의 현장을 함께 했다. 각양각색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보며, 이제는 죽음이 삶의 완성이란 말을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다. 환자를 통해 세상을 보고, 글을 통해 생의 의미를 함께 고민해 보려 한다. <편집자>

현재 방영중인 JTBC 드라마 &#39;라이프&#39;. 응급의료센터 전문의 예진우 역으로 출연 중인 배우 이동욱이 응급실에 실려온 환자를 치료하고 있다. [중앙포토]

현재 방영중인 JTBC 드라마 &#39;라이프&#39;. 응급의료센터 전문의 예진우 역으로 출연 중인 배우 이동욱이 응급실에 실려온 환자를 치료하고 있다. [중앙포토]

“심폐소생술을 하라고요? 아무 소용없는 걸 뭐 하러요?”

그랬다. 살릴 수 없는 환자였다. 더는 치료할 수단도 남아 있지 않았다. 사실 손을 내려놓은 지 한참 지났다. 남은 건 사망 선고뿐. 그런 와중이니 심폐소생술 지시에 전공의가 불만을 제기하는 것도 당연했다.

“그럼 네가 보호자 설득해봐.”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는 움직였다. 심폐소생술 중지 동의서를 들고, 문밖에 대기 중인 보호자를 찾았다. 하지만 대화는 길지 않았다. 몇 분이 채 지나기도 전에 그는 다시 중환자실로 돌아왔다. 양미간에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였다. 당연했다. 얘기가 잘 될 턱이 없었다.

“벌써 포기야? 왜? 더 설득해 보지?” “아니, 소용없어요. 말이 안 통해요. 아직은 떠나보낼 수 없대요. 지금은 안 된대요. 제 말은 아예 들어보려고도 하지 않아요.” “거봐라. 나라고 심폐소생술이 하고 싶겠냐? 힘든 거 뻔히 아는데.” “보호자가 동의하든 말든, 무시하면 안 돼요? 사망 선고는 의사의 고유권한이잖아요.”

“물론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겠지. 그런데 보호자와 싸움 날 게 뻔하지 않니? 그게 더 스트레스가 클 거 같은데. 차라리 그냥 몇 분 고생하는 게 편하지 않을까?” “그야 그렇죠. 근데 보호자 태도로 봐선 끝이 없을 거 같아서 그래요. 한 시간 넘게 해도 사망을 받아들이지 못할 거에요. 저 사람들 만족하게 하려면, 오늘 밤 내내 심폐소생술을 해야 할 걸요. 그러고 나면 저도 과로사로 죽고 말겠죠. 틀림없어요.” “걱정하지 마. 몇 분 안 해도 돼."

내 계산이 맞는다면, 설득은 금방 끝날 게 뻔했다. 전공의에게 나만 믿으라 했다. 그는 불신 가득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지만, 그렇다고 지시를 거부할 수도 없었다. 크게 한숨을 내쉬고는 심폐소생술을 시작했다.

죽음도 시간이 중요해

나는 보호자를 불렀다. 환자 상태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차례 얘기했었다. 굳이 길게 설명할 이유가 없었다. 예고했던 심정지 순간이 찾아왔고, 떠나 보낼 시간이 되었음을 알려주는 거로 충분했다.

“더는 의미 없습니다. 인제 그만, 사망선고를 내리겠습니다.” 보호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려가 무색하게 죽음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전공의에게 눈짓해서 심폐소생술을 멈추게 했다. 차분한 발음으로 또박또박 선고를 내렸다. “모월 모일, 0시 몇 분, 환자분 사망하였습니다.”

정리가 끝나자 전공의가 찾아왔다. “절대 안 된다고 날뛰더니, 의외로 쉽게 수긍하네요? 왜 태도가 바뀌었을까요? 아까는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화를 냈는데. 막상 끝나고 나니 고생해줘 고맙다고 인사까지 하더라고요.”

“살리지도 못했는데 뭐가 고마워서 인사까지 남겼겠냐? 원하는 걸 얻었으니 그런 거지.” “원하는 게 뭔데요?” “앞으로는 보호자와 좀 더 많은 얘기를 나눠보도록 해봐. 난 말이야, 환자뿐 아니라 보호자 마음마저 치료하는 사람이 진짜 의사라고 생각해.”

궁금해하는 그를 두고 돌아섰다. 대답해 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씁쓸한 현실을 굳이 입 밖으로 꺼내기 싫었기 때문이다. 경험이 쌓이면 자연히 알게 될 일이다. 죽음도 시간이 중요하단 사실을.

1분 차이로 하루가 사라지는 한국의 삼일장  

한국에는 삼일장이라는 전통이 있다. 남겨진 가족이 상주를 맡고 여기저가서 찾아오는 지인들은 맞이한다. [중앙포토]

한국에는 삼일장이라는 전통이 있다. 남겨진 가족이 상주를 맡고 여기저가서 찾아오는 지인들은 맞이한다. [중앙포토]

한국에는 삼일장이라는 전통이 있다. 사람이 죽으면 3일간 장례를 치른다. 남겨진 가족이 상주를 맡고, 여기저기서 찾아오는 지인들을 맞이한다. 고인의 옛이야기로 웃고 떠들고 슬퍼하며, 망자를 떠내 보내는 시간을 갖는다. 문제는 이 삼일장이 시간이 아닌 날짜가 기준이라는 점이다. 0시가 지나면, 융통성 없이 기간이 줄어든다.

누군가 23시 59분에 사망하면 고작 1분 만에 3일 중 하루가 사라지는 셈이다. 그러면 장례를 치를 시간 또한 하루가 줄어든다. 멀리 있는 친척들이 모일 시간이 부족해지고, 바쁜 일상에서 시간을 빼내기 힘든 사람도 생긴다. 자칫 빈소가 초라해지기에 십상이다.

당연히 부의금도 덜 걷힌다. 죽은 사람 두고 장사하는 건 아니지만 유가족들에겐 금전 문제 또한 중요하다. 엄연한 현실이다. 장례식 비용을 땅 파서 마련할 건 아니니까. 부의금은 망자가 들고 갈 노잣돈이 아니라 그가 남기는 유산에 더 가깝다.

시간이 조금만 늦춰지면 모든 게 바뀐다. 0시가 넘는 순간 사망진단서 날짜가 바뀐다. 3일의 시간을 온전히 가지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은 이 하루의 여유를 원한다. 23시 59분에 사망하면 4일장을 지내면 될 것인데. 전통이란 폭력은 에누리 없이 3일 만에 장례를 끝내게 강요한다.

그래서 우린, 죽은 시신에 심폐소생술을 한다. 이미 영혼이 빠져나간 텅 빈 육신에. 가슴을 누를 때마다 갈비뼈가 부러져 아스러진다. 목구멍으론 새빨간 피가 뿜어져 나온다. 그런데도 멈추지 못한다. 의사도 참 못 할 직업이다.

환자 또한 죽어서도 쉽게 눈을 감을 수 없다. 단지 시간 연장을 해 자정을 넘길 때까지. 친인척이 모일 시간을 늘려주고, 장례비용이 충분히 들어올 수 있게.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죽어서도 남은 이들을 위해 버텨야 한다.

조용수 전남대병원 응급의학과 조교수 semi-mo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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