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부격차 10년만에 최악…최저임금발 두번째 참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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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주도 성장을 내세운 문재인 정부의 ‘분배 성적표’가 최악을 기록했다. 2분기 기준으로 빈부 격차를 보여주는 지표가 2008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를 나타냈다. 고소득층은 더 버는데 빈곤층의 지갑은 더욱 얇아지는 모양새다. 저소득층의 소득을 끌어올려 소비를 진작시키겠다는 정부의 의도와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 정부는 고령화, 업황 부진과 같은 구조ㆍ경기적 요인을 꼽고 있지만,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을 제외하고는 설명하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소득주도 성장 정책의 실패를 극명히 보여주는 수치라는 평가가 나온다.

1분위와 5분위의 가구당 월평균 소득 증감률.[자료 통계청]

1분위와 5분위의 가구당 월평균 소득 증감률.[자료 통계청]

23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8년 2분기 가계동향조사(소득부문) 결과’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균등화 처분가능소득 5분위 배율은 5.23을 기록했다. 이 수치는 고소득층인 5분위(소득 상위 20%) 평균소득을 저소득층인 1분위(소득 하위 20%) 평균소득으로 나눈 값이다. 수치가 클수록 양극화가 심화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 수치는 1분기(5.95)보다는 개선됐지만 2분기 기준으로 보면 10년 만에 가장 나빴다. 계절적 영향 등으로 같은 분기 끼리 비교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통계청은 설명한다. 2015년 2분기에 4.19로 최저치를 기록했던 5분위 배율은 2016년 2분기 4.51, 2017년 4.73으로 올라가더니 올해 다시 5를 넘었다. 5분위 가구가 1분위보다 5배 이상 소득이 높다는 의미다.

2분기 5분위 비율 5.23 …10년만에 가장 커 #5분위 소득 10% 늘어나는 동안, 1분위는 8% 감소 #최저임금 인상이 취약계층 일자리 빼앗아 #"소득주도성장 실패 인정해야 양극화 심화 멈출 수 있어"

올해 1분기에 이어 2분기에도 저소득층의 지갑은 얇아지고, 고소득층 벌이는 늘고 있다. 2분기 5분위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전년 동기 대비 10.3%나 급증했다. 사상 최대 수준이다. 반면 1분위의 소득은 전년 대비 7.6% 줄었다. 2003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가장 큰 폭의 감소를 기록했던 1분기(8% 감소)와 맞먹는 감소 폭을 기록했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가운데)이 지난 6월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청와대 홍장표 경제수석과 김수현 사회수석 등이 참석한 가운데 소득분배 관련 경제현안간담회를 주재하고 있다.[연합뉴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가운데)이 지난 6월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청와대 홍장표 경제수석과 김수현 사회수석 등이 참석한 가운데 소득분배 관련 경제현안간담회를 주재하고 있다.[연합뉴스]

정부 목표와는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양극화 해소를 목표로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 저소득층의 소득을 늘려 주는 소득 주도 성장 정책을 펼쳐왔다.
정부는 경기 부진과 고령화 등을 원인으로 들고 있다.

박상영 통계청 복지통계과장은 “한국 경제가 2015년 이후 제조업을 중심으로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고 그 파급효과로 내수 부진이 이어지고 있는데 이런 여파가 영세 자영업자 등에 먼저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라며 “최근 고용 둔화도 1분위를 중심으로 떨어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기획재정부는 이날 배포한 보도참고자료에서 소득분배 악화 원인에 대해 “고령화, 업황부진 등에 따라 1분위 가구의 무직자가 증가했다”라며 “반면, 5분위는 임금 상승 폭 확대, 고용증가 등으로 소득이 늘었다”라고 말했다.

실제 소득 증감은 고용의 증가 여부와 비슷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 2분기 취업자 수가 1분위는 18% 감소했고, 2분위는 4.7%, 3분위(소득 상위 40~60%)는 2.1% 줄었다. 반면 소득이 많은 4분위(소득 상위 20~40%)는 2.5%, 5분위는 5% 증가했다. 취업자 수가 준 1~3분위의 소득은 줄었고, 4~5분기 소득은 늘었다. 저소득층의 취업자는 줄고 오히려 고소득층의 취업자는 늘어나며 이것이 양극화의 주요 원인으로 이어지고 있다.

결국 일자리 창출 실패가 분배 악화로 이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정부도 이를 인식하고 있다. 기재부는“소득분배 개선을 위해서는 근본적으로는 양질의 일자리 확충이 필요하다”라며 “규제개혁, 미래성장동력 투자 등 혁신성장 가속화로 민간의 일자리 창출 여력을 제고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일자리 부진의 핵심 원인을 정부가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과 같은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부작용이다. 상용직 근로자 일자리는 늘고 있지만, 임시ㆍ일용직 근로자는 지난 5월 이후 전년 대비 10만명 이상 감소하고 있다. 고용 쇼크가 취약계층에 특히 큰 충격을 주고 있는 만큼 이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이 일자리를 지키고 있는 고소득층에게는 더욱 큰 벌이를 안겨주지만, 취약계층에는 일자리를 뺏어가는 역할을 하고 있다”라며 “최저임금의 60~70% 수준을 받아도 일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등 보완책이 시급하다”라고 지적했다.

경제 정책의 전환을 주문하는 목소리는 더 거세진다. 청와대와 정부는 “소득주도 성장 정책 기조 변화는 없다”라고 누차 강조하고 있는데 이러면 일자리 참사와 심화하는 양극화 흐름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표학길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성장을 도외시하면 결국 분배도 이뤄지지 않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라며 “소득주도 성장 정책의 실패가 분명히 드러난 만큼 정부는 경제정책을 성장 중심으로 완전히 전환하고 필요하면 경제팀에 대한 인적 쇄신도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세종=하남현 기자 ha.nam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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