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춘, 2014년에도 박병대·조윤선 등 불러 日징용 재판 논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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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단체 부당지원 등 ‘화이트리스트’ 작성 의혹을 받고 있는 김기춘 전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20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25회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보수단체 부당지원 등 ‘화이트리스트’ 작성 의혹을 받고 있는 김기춘 전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20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25회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2014년 하반기에도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전 대법관), 조윤선 청와대 정무수석, 관계부처 장관 등을 만나 일제강점기 강제노역 피해자들이 일본 전범 기업들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건에 대한 재판을 논의한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 신봉수)·3부(부장 양석조)는 김 전 실장이 당시 법원행정처장, 청와대 정무수석, 관계부처 장관 등을 비서실 공관으로 불러 재판 진행 상황과 향후 방향에 대해 협의한 부분에 대해 자료와 진술을 확보해 수사 중이라고 21일 밝혔다.

앞서 김 전 실장은 해당 재판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2013년 12월 1일 서울 삼청동 비서실장 공관에서 차한성 행정처장과 윤병세 외교부 장관을 만난 바 있다. 이 자리에서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소송 지연 등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밝혀진 2014년 두 번째 회동에는 다른 부처 장관들도 참석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두 번째 회동 역시 김 전 실장이 소집했고 징용소송을 주제로 대화가 오갔다는 관련자 진술과 기록 문건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도 검찰은 2013년 말부터 2016년 말까지 법원행정처와 외교부 간부들이 수차례 접촉했고, 이 과정에서 피고 측 변호인과 청와대와의 협의도 있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2012년 5월 대법원은 “일제 징용 생존자에 대한 일본 기업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취지로 다시 재판하라”며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이후 서울고법은 대법원의 법리판단 취지에 따라 피해자들에게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런 결정에 맞게 수정돼 사건이 대법원으로 돌아왔지만, 이후 5년 동안 대법원은 최종 판결을 내리지 않았다. 현재까지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검찰은 행정처가 이같은 방식으로 소송을 미룬 뒤, 법관 해외파견 자리를 얻어낸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검찰은 구속 수감 중인 조 전 수석과 당시 회동에 배석한 정부 관계자들을 불러 구체적인 회동 내용을 확인할 방침이다.

그동안 소송을 낸 고령의 강제 징용 피해자 9명 중 7명이 세상을 떠났다. 대법원은 다음주 이 사건에 대한 전원합의체 심리에 들어갈 계획이다.

한영혜 기자 han.younghy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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