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 떨어질라’ 국회만 가면 국민연금 개혁 지지부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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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7호 04면

SPECIAL REPORT 

“약사발(보험료율 인상)은 엎어 버리고 사탕(기초노령연금)만 먹었다.”

여야, 보험료율 인상은 애써 외면 #개혁은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낮은 수익률 등 정치공세만 열올려 #노후소득 강화, 대통령 공약도 변수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2007년 4월 ‘더 내고 덜 받는’ 방식의 국민연금 개편안이 국회에서 부결되자 던진 말이다. 유 전 장관의 말처럼 정치권에서는 국민연금 개정 논의가 진행될 때 보험료율 인상은 애써 외면했다. 연금을 더 내라고 하는 것은 지지율이나 표에 도움이 될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제도발전위원회가 17일 제도 개선안을 발표했지만 정치권 논의가 쉽지 않을 거란 전망이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위원회는 올해 기준 소득대체율(45%)을 그대로 유지하는 방안과 소득대체율을 2028년까지 낮추는 방안 등을 내놓았는데 모두 보험료율 인상을 전제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국회 발의된 국민연금법 개정안들

국회 발의된 국민연금법 개정안들

일단 여야 모두 국민연금 제도 개선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의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기동민 의원은 “지금은 구체적인 방안을 얘기할 단계가 아니다”고 말했다. 자유한국당 복지위 간사인 김명연 의원도 “보험료율이나 소득대체율 등은 아직 이야기할 단계가 아니다”며 “정부·여당에서 확정된 안을 제출하면 연금재정 등을 고려해 본격적으로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안을 확정해 국회로 넘기더라도 전망은 매우 불투명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국민연금은 노후소득 보장 강화를 원칙으로 논의하되 사회적 합의 없는 보험료 인상은 없다”며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도 변수다.

익명을 요구한 야당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대선 공약 후퇴를 솔직하게 인정하지 않는다면 여당의 협상 여지가 줄어들기 때문에 논의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소득대체율을 50%까지 올려야 한다는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에 대해 기동민 의원은 “존중해야겠지만 금과옥조는 아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여야는 국민연금 개편 자체보다 ‘곁가지’에 더 관심을 두고 있다. 민주당은 “확정도 되지 않은 내용이 전해져 큰 혼란을 야기한 점에 대해 복지부는 반성해야 한다”(홍영표 원내대표)며 21일 열릴 국회 복지위 전체회의를 벼르고 있다. 현안질의에선 여당 의원들이 박능후 복지부 장관을 질타하는 ‘보기 드문’ 장면이 연출될 전망이다.

한국당은 “국민연금 운영수익률이 1% 이하로 떨어졌다. 문재인 정권의 무능함이 여실히 드러났다”(김성태 원내대표)며 연금 운용과 관련해 공세를 집중하고 있다. 장기간 기금운용본부장을 임명하지 못한 점 등 공격 포인트가 많다는 판단에서다. 바른미래당 김관영 원내대표도 전날 청와대 오찬에서 문 대통령에게 “기금운용 본부장을 서둘러 임명하라”고 말했다.

당 지도부의 이런 방침과는 별개로 20대 국회엔 국민연금 관련 법안이 몇 건 계류돼 있다. 그런데 대체로 ‘그대로 내고 더 받는’ 내용이어서 현실성이 떨어진다. 민주당 권미혁 의원은 소득대체율을 현행 45% 그대로 유지하는 법안을, 같은 당 정춘숙 의원은 소득대체율을 매년 0.5%포인트씩 올려 2028년에는 50%가 되도록 하는 법안을 냈다. 현행 국민연금법은 소득대체율을 매년 0.5%포인트씩 낮춰 2028년엔 40%까지 낮추게 돼 있는데 거꾸로 올리자는 것이다. 권 의원의 안은 2060년까지 539조7630억원이, 정 의원의 안은 같은 기간 1076조7900억원이 더 들지만 두 법안 모두 모두 보험료 인상은 언급하지 않고 있다.

과거 국회 논의도 현재와 비슷해 국민연금 개혁은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였다. 그나마 가장 적극적으로 논의가 진행된 건 17대 국회였다. 당시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은 “반드시 국민연금을 개혁해야 한다”며 보험료율을 12.9%까지 올리고 소득 대체율을 60%에서 50%로 낮추는 내용의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밀어붙였다. 2007년 4월 국회 본회의에 상정됐지만 야당인 한나라당의 반대로 부결됐다. 비판 여론이 거세게 일자 여야는 ‘그대로 내고(9%) 덜 받는(40%)’ 방식을 택해 간신히 법을 통과시켰다. 대신 2028년까지 노인 60%에게 평균소득액의 10%를 지급하는 기초노령연금을 도입했다. 2007년은 대선이 있던 해로, 여야가 보험료율을 그대로 둬 표를 깎아 먹지 않겠다는 계산에서 나온 ‘거래’였다는 비판을 받았다.

안효성·김경희 기자 hyoz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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