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연 오늘 삼성 방문 … 느닷없는 ‘구걸’ 논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김동연 부총리가 지난 2일 중구 서울스퀘어에서 혁신성장 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뉴스1]

김동연 부총리가 지난 2일 중구 서울스퀘어에서 혁신성장 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뉴스1]

6일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 공장에서 이뤄질 김동연 경제부총리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간담회는 ‘불편한 만남’이 될 전망이다. 둘의 만남이 본의 아니게 ‘대기업 구걸’ 논란에 휩싸이면서다. 당초 김 부총리의 방문에 맞춰 100조원 규모의 투자안을 발표하려던 삼성이 발표 계획을 전면 취소하는 등 파장은 커지고 있다. <중앙SUNDAY 8월 4일자 1면>

관련기사

5일 복수의 청와대·기획재정부·삼성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이런 논란의 배경에는 경제 수장인 김 부총리와 청와대 참모진 간의 정책 ‘불협화음’이 자리 잡고 있다. 사실 김 부총리는 수개월 전부터 삼성 방문을 구상해 왔다. 그가 지난해 12월 구본준 LG그룹 부회장을 시작으로 정의선 현대차그룹 부회장(1월), 최태원 SK그룹 회장(3월) 등 대기업 오너들을 잇따라 만난 것의 연장선상이다. 그는 지난 5월 기자들과 만나 “대기업 소통과 관련해 4대 재벌뿐 아니라 어떤 재벌과도 만나는 것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며 삼성과의 만남을 가시화했다.

진보 진영 재벌 개혁 후퇴 우려에 #청와대 “투자 강권 느낌 주면 안 돼” #김 부총리 “구걸 아니다” 강한 반박 #삼성 측선 100조 투자 발표 연기

하지만 이후 일부 진보진영을 중심으로 정부가 삼성에 투자·고용 확대를 위해 손을 벌리면 재벌개혁이 느슨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김 부총리는 “정부가 투자에 대해 요구하거나 종용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1일 소상공인들과의 간담회), “저의 민간기업 방문을 바라보는 일부 시각에 대해 유감을 표한다”(2일 혁신성장관계장관회의)며 강행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청와대에서 “정부가 강권하는 느낌이 나기 때문에 삼성 방문에 맞춰 투자계획을 발표하는 건 좋지 않다”는 취지를 전달하면서 이를 수용하기로 입장을 바꿨다. 그런 와중에 청와대 일각에서 그의 삼성 방문을 ‘구걸’이라고 비판하는 의견을 일부 언론에 흘리자 김 부총리가 이례적으로 자신 명의의 ‘입장문’을 내고 “(구걸이라는 표현은) 적절치 않다. 국민이 바라는 혁신성장과 일자리 창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하게 반박한 것이다.

그간 김 부총리와 청와대·여당은 최저임금 이슈, 고용 대책, 금융소득 종합과세 등에서 엇박자를 내는 모습을 자주 연출해 왔다. 정부 사정에 밝은 한 재계 관계자는 “정부의 핵심 과제인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는 대기업과의 거리를 좁히는 게 필요하다는 게 김 부총리의 판단”이라며 “그런데 청와대 발(發)로 ‘구걸’이라는 원색적인 표현을 쓴 비난 기사가 나오니 불만이 폭발한 것”이라고 전했다.

소득주도 성장에 대한 시각차도 이번 갈등의 숨은 배경으로 꼽힌다.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 이후 일자리가 줄고, 저소득층의 소득이 되레 감소하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이에 김 부총리는 규제혁신을 통해 기업의 투자촉진을 북돋는 ‘혁신성장’으로 정책 방향을 미세조정했다. 그러나 청와대 참모진의 입장은 다른 생각이다. 소득이 시장에 분배되고 그 돈이 다시 내수시장으로 흘러들어오는 데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여기에 ‘삼성’이라는 논쟁적인 이슈까지 끼어들며 불씨가 커졌다. 경제지표가 나빠지자 정부가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됐던 삼성에 기대는 모습이 연출되는 것에 대해 일부 진보 인사들이 거부감을 표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논란에 대해 기재부 관계자는 “입장문은 부총리의 행보에 대해 불필요한 오해가 난무하고 있어 이를 바로잡고자 했을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문재인 대통령이 인도에서 이 부회장을 만나 투자를 확대하고 일자리를 만들어 줄 것을 부탁한 마당에 삼성 방문을 문제 삼는 것은 청와대 참모진의 편협한 시각을 드러내는 것”이라며 “기재부가 청와대와의 이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점도 ‘정책 혼선’을 부각하는 만큼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한편 삼성전자는 김 부총리와 이 부회장의 회동 이후 오해가 없는 시기를 다시 골라 100조원 규모의 투자·고용 확대 계획을 발표하기로 했다.

세종=손해용 기자 sohn.yong@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