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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 먹었나, 엔진 식었나… 대한민국 대표 기업들 ‘주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업종별 1·2위 기업 2분기 성적표 분석  

지난달 경기도 수원에 있는 삼성전자 교육장. 젊은 연구원들의 얘깃거리는 단연 중국 스마트폰 공습이었다. 요컨대 “중국의 휴대폰 굴기(堀起)가 예상보다 빠르고 매섭다”는 거였다.

3일에도 세계 최대 스마트폰 시장인 중국에서 삼성전자의 점유율이 다시 1% 미만으로 떨어졌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SA)에 따르면 삼성은 올 2분기 중국에서 80만 대를 출하, 점유율 0.8%로 12위에 그쳤다. 2013년엔 20%에 달하던 삼성의 중국 시장 점유율은 현지 업체들에 밀려 줄곧 추락해 지난해 4분기 0.8%까지 감소했다가 올 1분기 가까스로 1.3%로 올랐었다. 하지만 2분기 다시 1% 미만으로 떨어진 것이다.
SA에 따르면 삼성전자 휴대폰은 글로벌 시장에서 올 2분기 7150만 대가 팔렸다. 지난해 같은 기간(7950만 대)과 비교해 판매 대수도, 점유율(22.1→20.4%)도 뒷걸음질했다. 2위는 미국 애플(11.8%)에서 중국 화웨이(15.5%)로 바뀌었다.

현대자동차는 차는 괜찮게 팔리는데 남는 돈이 별로 없다. 쉽게 말해 장사를 ‘야무지게’ 못하고 있다. 2분기 영업이익이 9508억원으로 지난해 동기 대비 29.3% 감소했다. 불과 6~7년 전만 해도 영업이익률이 9~10%였으나 올해부터는 3%대에 그치고 있다.

업종별 대표기업 2분기 경영 실적 (단위: 원)

기업명

 올 2분기
 영업손익

 전년 동기
 대비 차이

  주요 현안

삼성전자

14조8690억

   +5.7%

스마트폰 고전, 반도체 편중

현대자동차

     9508억

  -29.3%

미국 판매 부진, 수익성 악화

포스코

 1조2523억

  +27.9%

미국 통상 압박, 내수 부진

KT

     3991억

  -10.8%

요금 인하, 5G 인프라 투자

SK텔레콤

     3469억

  -18.0%

요금 인하, 5G 인프라 투자

SK이노베이션

     8516억

 +103.2%

정제 마진 악화 우려

LG디스플레이

    -2281억

 적자전환

중국발 LCD 공세

현대건설

     2208억

  -17.1%

해외 프로젝트 수익성 확보

현대중공업

    -1757억

 적자전환

원자재가 상승, 일감 부족

아모레퍼시픽

     1458억

  +43.5%

사드 보복 여파 미회복

한샘

       267억

  -18.6%

부동산 매매 시장 침체

자료: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국내 대표 기업들의 경영 실적이 주춤하고 있다. 3일 중앙일보가 전자·자동차·건설·통신 등 주요 업종별 1·2위 기업의 올 2분기 영업이익을 조사했더니 상당수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하락했거나 시장 기대치를 밑돌았다. 영업이익은 기업이 순수하게 영업활동을 통해 얻은 수익으로, 해당 기업의 채산성·경쟁력을 보여주는 경영 지표다.

이런 실적 부진에 대해 일부에선 계절적 비수기, 일시적 비용 증가 등이 원인이어서 3분기부터는 회복세로 돌아설 것이란 긍정론이 있다. 반면 핵심 경쟁력 추락과 중국의 추격 등 구조적인 결함이 노출됐다는 분석도 있다. 대한민국 대표 기업들이 잠시 ‘더위’를 먹은 것인지, ‘성장엔진’이 식고 있는 것인지 따져봐야 한다는 얘기다.

상당수가 실적 하락 또는 기대 못 미쳐

삼성전자는 ‘반도체 쏠림’이 우려할 수준이다. 이 회사는 2분기 14조8690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영업이익률이 25.4%로 사상 최대였던 1분기(25.8%)와 비슷하다. 하지만 내용이 문제다. 메모리 반도체인 D램은 영업이익률이 70%에 이르지만, 휴대폰·디스플레이 성적은 시들해지고 있다. 스마트폰이 포함된 이 회사 IM(IT·모바일) 부문의 2분기 영업이익은 2조67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5% 줄었다. 아이폰 X를 앞세운 애플이 같은 기간 판매 대수는 줄었어도 영업이익이 126억1200만 달러(약 14조1300억원)였다는 사실과 대조적이다. 삼성이 1조3900억원을 덜 번 사이 애플은 2조원(17.1%)을 더 벌어들였다.

증권가에선 “3분기부터는 다시 실적 신기록을 세울 것”이라고 예측하지만, 역시 반도체 호황에 기댄 낙관적 전망이다.

현대차 앞에는 미국 시장 부진에다 통상 마찰, 내수 경쟁 격화 등 위협 요인이 지뢰처럼 묻혀 있다. 원화가치 하락, 개별소비세 인하 같은 호재도 있지만 겹겹이 쌓인 악재에 가려 빛을 보기 어렵다는 관측이다. 현대차의 1차 협력사 리한은 지난달 주채권 은행인 산업은행에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을 신청했다. 현대차 1차 협력사가 워크아웃을 신청한 것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이다. 완성차 업계가 수출·내수에서 모두 제동이 걸렸고, 그 여파가 자동차 산업 생태계 전체로 확산하는 형국이다.

정보통신·자동차와 함께 제조업의 근간이던 조선업은 이미 빈사 상태다. 현대중공업(-1757억원)은 3분기 연속으로 영업 손실을 냈다. 삼성중공업(-1005억원)도 저조한 실적이 이어지자 주가가 최근 10년래 최저로 곤두박질했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는 대우조선해양은 영업 흑자가 예상되지만, 그 폭은 지난해보다 5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삼성전자 화성사업장 반도체 라인의 내부 모습. 삼성전자는 올 2분기 반도체에서만 12조원 가까운 영업이익을 거뒀지만 휴대폰·디스플레이 실적은 부진했다. [사진 삼성전자]

삼성전자 화성사업장 반도체 라인의 내부 모습. 삼성전자는 올 2분기 반도체에서만 12조원 가까운 영업이익을 거뒀지만 휴대폰·디스플레이 실적은 부진했다. [사진 삼성전자]

철강·유화 선전했지만 하반기 ‘먹구름’  

디스플레이 업계도 고전하고 있다. LG디스플레이는 올 2분기에만 2281억원의 영업적자를 냈다. 상반기 누적 적자가 3264억원에 이른다. 지난해 상반기 1조8311억원이라는 역대 최고 실적을 거뒀다가 불과 1년 만에 급전직하한 것이다. 중국발 액정표시장치(LCD) 공세에 가격 하락, 시장 둔화라는 스트레이트 펀치를 맞고서다.

통신회사들도 역시 활력이 떨어지기는 매한가지다. KT는 3일 3991억원의 영업이익을 발표했다. 연결기준 지난해보다 10.8% 줄어든 것이다. SK텔레콤(3469억원)의 영업이익은 18%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요금 할인(선택 약정) 확대, 취약 계층 요금 감면 등 정부의 통신비 인하 정책이 통신사의 수익성을 묶었다. 내년 5세대(G) 이동통신 상용화를 앞두고 20조원대 투자가 예고돼 있어 업계로선 부담이 만만치 않다.

건설업계는 희비가 엇갈렸다. 현대건설(2208억원)과 대우건설(1617억원)의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각각 17.1%, 34.2% 감소했다. “외국의 대형 프로젝트들이 마감되지 않아 실적에 반영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다만 삼성물산·GS건설 등은 수익성이 개선됐다.

지난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 여파로 직격탄을 맞았던 아모레퍼시픽(1458억원)은 아직 실적 회복을 못 하고 있다. 이 회사의 2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해 43.5% 증가했으나 시장 추정치(1660억원)를 밑돌았다. 가구업계 1위 한샘(267억원)도 휘청거렸다. 주택 매매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수요가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 울산2공장의 싼타페 생산라인 전경. 이 회사는 올 들어 영업이익률이 3%대로 떨어졌다. [연합뉴스]

현대자동차 울산2공장의 싼타페 생산라인 전경. 이 회사는 올 들어 영업이익률이 3%대로 떨어졌다. [연합뉴스]

그나마 정유·석유화학·철강 업종이 선전하고 있지만 한두 개씩 고민거리를 안고 있다. SK이노베이션(8516억원)의 영업이익은 지난해보다 103.2%나 증가했다. 그런데 정제마진이 줄어들어 근심이다. 정제마진은 석유제품 가격에서 원윳값·수송비 등을 뺀 이익을 뜻한다. 롯데케미칼(7013억원) 역시 10.9% 늘었으나 하반기엔 실적 둔화가 점쳐진다. 포스코(1조2523억원)는 4분기 연속으로 영업이익이 1조원을 넘겨 선방하고 있지만, 미국·유럽의 통상 압박 이슈 때문에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친시장 정책으로 선제 투자 유도해야” 

지난달 수출이 518억 달러(약 58조원)로 역대 2위를 기록했다고 하지만, 어디까지나 반도체·석유화학·철강 등 일부 업종 얘기다. 특히 수출의 20%를 차지하는 반도체가 꺾이면 언제든 위기가 찾아올 수 있다. 기업의 저조한 실적은 투자·채용 부진을 부르고 다시 실적 악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초래한다. 정책 전환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이장희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이럴 때 정부 역할이 중요하다”며 “기업의 선제 투자와 연구개발을 유도하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쳐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재·문희철 기자 lee.sangja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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