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 올림픽』의 산 교육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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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하계올림픽에 이어 장애자 올림픽도 대성공을 거두고 끝났습니다. 하계올림픽과는 또 다른 의미에서 장애자올림픽은 많은 것을 남겼다고 생각합니다. 당초 2백31억원의 막대한 경비를 들여 이런 대회를 치를 필요가 있느냐는 비판도 있었읍니다만 대회가 끝난 지금은 그런 비판의 소리는 별로 없을 듯 싶습니다만….
-그래요 61개국 4천2백78명의 선수단이 참가한 이번 대회는 하계올림픽과 마찬가지로 규모와 내용 등 모든 면에서 신기원을 이룩한 최고의 대회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한국과 한 국민의 국제사회에서의 신뢰와 존경이 더욱 높아지게 되었읍니다만 그보다도 소중한 것은 우리사회 일반의 장애자를 보는 시각, 장애자문제에 대한 관심을 획기적으로 바꾸고 증진시키는 계기가 된 점을 꼽아야 할 것 같습니다.
-경기장의 관중동향에서부터 그런 변화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관중이 적어 쓸쓸할 것이라는 당초 우려와는 달리 후반에 갈수록 많은 시민들이 열띤 호응으로 높은 관심을 보여주었습니다.
-잠실 주경기강의 경우 연일 1만명 이상의 관람객들이 몰렸고 마지막 23일에는 무려 4만명 이상이 경기장을 찾아 올림픽의 열기를 방불케했습니다.
-특히 어린이들의 정서교육에 「산교육장」의 역할을 톡톡히 했어요. 대부분의 학교가 오전수업만 하고 경기장을 찾아 인간승리의 모습을 직접 눈으로 지켜보았는데 한 국민학교 교사는『학교에서 인간성 교육을 백 번 하는 것보다 낫다』며 「백문이 불여 일견」이라고 하더군요. 또 자녀들과 함께 가족 단위로 관람한 부모들은 『올림픽보다 오히려 훨씬 더 교육적』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열전 10일 동안 신체적 불구를 딛고 선수들이 보여준 인간승리는 감동적이었습니다. 경기장에 왔던 시민들이 장애자선수들의 초인적 투지에 감격, 이들을 위해 써달라며 즉석에서 호주머니 돈을 모아 전달하는 성금이 줄을 잇기도 했습니다.
-외국선수들의 특징 중 하나는 장애부위를 스스럼없이 노출시키는 등 장애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자원 봉사자들이 안쓰런 표정을 지으며 도와주려하면 화를 내면서 『과잉친절은 오히려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고 항변하기도 했어요. 힘이 들더라도 가능하면 남의 힘을 빌지 않으려는 이들의 태도에서 강한 자립의지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 각국별 메달획득 상황을 보면 미국·영국·서독 등 서방선진국들이 상위권을 휩쓸어 올림픽과 대조를 이루며 장애자올림픽은「복지올림픽」임을 실감케 했습니다.
-중국·소련 등도 개방정책이후 장애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추세라고 합니다. 소련은 모스크바올림픽을 개최하면서 장애자올림픽은『소련엔 장애자가 없다』고 거절했어요. 서울 장애자올림픽에 처음 참가했는데 전원 시각장애자만 참가시켰어요. 이번 대회에서 많은 자극을 받은 눈치였고 다음 번엔 달라질 것 같더군요.
-복지문제와 관련, 첨단보장구들이 많이 등장해 관심을 모았습니다.「작은 승용차」라 할 수 있는 전동횔체어, 알루미늄의 수족, 소형 귀걸이식 보청기 등이 주로 서방 선수들로부터 선보여 부러움을 샀지요.
다리뿐 아니라 양팔도 쓸수 없는 중증 장애자를 위한 버튼식 전자동횔체어는 대 당 승용차 1대 값인 6천달러를 호가하는데 국가에서 무료로 나누어준다고 자랑하더군요.
-이번 대회 3천1백여명의 참가선수 중 장애별로는 척수장애가 가장 많고 절단·시각장애·뇌성마비의 순이었습니다.
이중 선천성 장애는 시각장애와 뇌성마비 등으로 전체의 20%미만이고 대부분이 교통사고·추락·감전, 스포츠사고 및 전쟁부상 등 후천성 장애여서『당신도 장애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이 가슴에 와 닿더군요.
-선천성 장애 중에서도 팔이 없이 양손만 어깨에 매달려있는「살리도 마이드」 장애자는 60년대 유럽지역에서 안정제를 잘못 복용한 부작용으로 태어난 환자들이어서 약물부작용의 문제에 대해 경각심을 일깨웠고 뇌성마비 장애는 대부분 임신 중 잘못에서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번 장애자 올림픽은 운영·시설면에서도 합격점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초반 지루한 배식 시간, 때늦은 물품지급 등으로 불편을 겪었던 선수촌은 점차 운영요원들이 익숙해지고 자원봉사원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선수·임원들을 만족하게 했습니다. 전 대회 참가 경력이 있는 선수들은 『장애자 대회를 위해 선수촌 아파트까지 새로 지어준 나라는 없었다』며 무척 고마워하더군요. 이 때문에 대부분의 선수들이 경기를 마친 뒤에도 출국을 하지 않은 채 선수 문을 닫는 27일까지 머무르겠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5개경기장의 시설도 서울올림픽의 시설을 그대로 활용해 역대 장애자올림픽 중 가장 훌륭한 시설을 자랑할 수 있었지요. 점자식 버튼이 장치된 엘리베이터, 휠체어 경사로 등이 곳곳에 설치돼 외국선수들의 감탄을 자아냈습니다.
-운영면에서도 초반 일부경기가 지연되고 조명이 제대로 안 되는 등 미숙함을 보이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가장 짜임새 있었다는 평판입니다.
큰 대회마다 문제가 되어온 약물중독과 판정시비 등이 거의 없었던 것도 특징입니다. 그러나 육상 휠체어 활강부문에서 경기운영 규칙을 몰라 뒤늦게 메달 취소소동이 벌어지기도 했고 일부 임원들의 고압적인 자세가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도 했습니다.
-대회기간 중 소개된 외국의 장애자복지제도는 부러운 게 많았습니다. 그러나 대회에 참가한 외국선수들은 우리의 훌륭한 가족제도에 한결같이 부러움을 표시하더군요.
-장애자문제의 해결은「가정」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은 많은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입니다. 그런 점에서 장애자가정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가족들의 인식·태도도 중요하고요.
-손훈 선수가 좋은 예인데 아버지 (50)가 뇌성마비인 손 선수와 매일아침 달리기를 함께하고 운동장에서 테니스 공을 친 뒤 손 선수에게 주워 오게 하는 강훈련을 시켜왔다는 것입니다. 손 선수는 이번 대회에서 한국 선수 중 최다메달인 4관왕의 영광을 안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자원봉사자들의 헌신적인 봉사도 언급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번 대회 성공의 가장 큰 밑받침이 되었습니다. 선수들이 정상인이 아니기 때문에 세탁·숙소정리에서부터 「휠체어 밀기」 등 각종 「궂은 일」들을 도맡았어요. 이들의 헌신적인 봉사정신은 두고두고 기억해야할 우리의 소중한 재산이었습니다. <정리 민병관 기자>

<참석자> △정순균 △민병관 △김동균 △전영기 △이철호 △김기봉 △홍승일 △ 변영철△오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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