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님, 난민 친구 하나 품을 수 없는 나라인가요?"...중3 학생들의 호소

중앙일보

입력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파출소 앞에서 열린 난민 반대에 반대하는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제주도의 예멘 난민을 수용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파출소 앞에서 열린 난민 반대에 반대하는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제주도의 예멘 난민을 수용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라고 하는 우리 대한민국이 정말 제 친구 하나를 품어줄 수 없는 것인지, 인권변호사셨던 대통령님께서 출입국관리사무소의 난민심사를 개선할 생각은 없으신지. 친구가 허망하게 가버리면 저희 학교 600명 학생에겐 큰 상처가 될 것입니다."

지난 11일 중학교 3학년 학생이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올린 청원 중 일부다. 서울 송파구 A중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이란에서 온 친구를 도와달라며 청와대에 호소했다. 해당 청원에는 약 1만3000여명의 시민이 도움의 손길을 건넸다.

이란에서 온 A중학교 3학년 B군(15)은 2003년 테헤란에서 태어났다. 한국에서 사업을 하려던 아버지를 따라 2010년 여름 한국을 방문했다가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고 한다. B군과 아버지는 현재 기독교 신자다. B군 부자는 2016년 난민 신청을 했지만, 출입국관리사무소는 당시 13살이었던 B군의 종교적 가치관이 정립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과 국내에서 교회를 나갔다는 이유로 귀국 시 박해받을 가능성이 작다는 이유를 들어 받아들이지 않았다.

B군 부자는 행정소송까지 진행했지만 B군의 손을 들어준 1심과 달리 2심에서는 패소했다. 대법원에서는 심리불속행기각돼 최종적으로 난민 지위를 얻는 데 실패했다. 현재 B군 부자는 난민지위 재신청 절차를 밟고 있다.

A중학교 학생들은 "이란으로 가면 어디로 가는지 모르게 소리소문없이 사라진다는 기독교 개종자들. 풀이 죽어 있는 친구를 보며 너무 가슴이 아팠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우리의 처지가 너무 암울했다"고 하소연했다.

서울의 A중학교 학생들이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올린 사연. [중앙포토]

서울의 A중학교 학생들이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올린 사연. [중앙포토]

한국의 난민 심사 공무원 수가 턱없이 부족하고, 난민이 본국에서 처한 상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이 문제라는 주장도 있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박영하 변호사는 "한국의 난민 인정률이 낮은 이유는 난민심사 담당 공무원 수가 적고, 난민들이 본국에서 어떠한 상황에 처해 있는지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고 지적했다.

박 변호사는 "난민이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있는지 공무원들이 공감하기 어려운 환경인 탓에 심사가 쉽지 않다. 기준 자체를 낮추고 객관적으로 난민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도록 제도가 개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난민인권센터 김연주 변호사는 "한국의 난민심사는 신청인이 과거 본국에서 얼마나 박해를 받았는지에 초점을 맞춰 진행된다. 그러나 난민협약에 따라 제대로 심사를 하려면 본국으로 돌아갔을 때 박해를 받을 가능성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중학교 3학년 학생의 과거 박해 사실에만 집중하는 것은 앞으로의 위협을 예측하기 어렵게 만든다"고 말했다.

B군 부자의 체류 상황도 문제다. 한국에서는 난민 재신청자의 경우 일괄적으로 출국명령을 내린다. 김 변호사는 "재신청자는 ID카드를 빼앗기고 심사 동안 출국 기간을 유예 당하는 형식으로 체류할 수밖에 없다"며 "재신청자들의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일괄적으로 남용적 신청자로 규정하는 제도도 손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무부는 충분히 소명기회를 줬다는 입장이다. B군 사례의 경우 출입국관리사무소와 법무부 장관에 대한 이의신청, 행정소송 3심까지 총 5단계에 걸쳐 충분한 소명과 기회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난민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때 소명 기간 동안 임시 체류가 가능하다는 점도 법무부로선 고민거리다. 종교상 박해를 이유로 거짓 개종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소명 절차를 밟는 동안 충분한 실체적 위험에 처해 있는지, 구제의 필요성이 있는지 확인한다는 게 법무부의 설명이다.

김정도 법무부 난민과 과장은 "행정소송으로 대법원까지 가서 기각된 사례에 대해 재심사를 받도록 배려한 것 외에 또 어떤 것을 해줄 수 있는지 의문이다"고 반문했다. 김 과장은 "대법원에서도 심리불속행 기각된 사람들을 무조건 체류하도록 해주기는 어렵다. 한국인이 대법원 판결에 따라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말했다.

오원석 기자 oh.wonseok@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