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사관학교 개교 60주년 세월 따라 그곳도 변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3면

3월 3일 육사 62기 임관식에서 졸업하는 생도들이 임관 선서를 마친 뒤 육사 연병장에서 '분열 행진'(몇 줄로 나뉘어 걸어가는 것)을 하고 있다. 뒤에 교훈탑이 보인다. [국방부 제공]

육군사관학교(육사)가 1일 개교 60주년을 맞는다. 그동안 배출한 1만7700명의 장교는 국토 방위의 중추를 맡아왔다. 하지만 일부는 사조직을 만들어 정치의 최일선을 넘나들면서 지탄을 받았다. 영욕의 60년이었다. 지금은 학군장교(ROTC) 등이 늘어나면서 육사 위상은 계속 축소되고 있다.

◆ '선배가 하늘'은 옛노래="식사할 때는 숟가락을 수직으로 올려 직각으로 꺾는다."'직각 식사'는 육사 생도의 심벌이었다. 그러나 이젠 옛 이야기다. 신입생들이 정식 입교 전에 받는 기초군사 훈련 때나 지키는 규칙이다. 선배들이 밉보인 후배에게 얼차려를 시키는 것도 쉽지 않다. 구타는 아예 불법이다. 선배가 후배를 구타하면 곧바로 징계위에 회부된다. 육사의 생도 문화는 육사의 위상만큼이나 바뀌었다. 지금은 생도 선후배 사이에도 상호 존중의 새 문화가 뿌리를 내렸다. 자율과 책임을 중시한다. '선배가 하늘'이라는 구습도 사라졌다.

1998년부터 여생도(58기)를 뽑으면서 분위기가 부드러워졌다. 3, 4학년에 대해선 이성교제도 허용하고 있다. 육사 출신 남녀 장교끼리 결혼하는 경우도 적지않다. 교내의 여풍(女風)은 거세다. 매년 전체 신입생 230여 명의 10%가량을 차지한다. 성적뿐 아니라 체력 면에서도 남자 생도에게 뒤지지 않고 있다. 현재 100여 명의 여생도가 임관해 근무 중이고 100여 명이 재학 중이다. 기본 규율은 시대의 흐름을 따르고 있다. 외출.외박이 대폭 완화됐다. 지난해부터 2학년 이상은 매주 나갈 수 있다. 그전엔 월 1, 2회로 제한됐었다. 생도들은 휴대전화도 소지할 수 있다. 그러나 흡연과 음주.혼인 등을 금지하는 '3금(三禁)' 제도는 여전하다. 개교 이래 지금까지 계속된 규칙이다.

교육체계는 첨단화돼 있다. 4인 1실의 숙소는 인터넷 접속이 가능하다. 개인마다 노트북 PC가 지급된다. 정보화된 전쟁체계에 적응토록 하기 위해서다.

생도의 하루 생활표는 오전 6시~오후 10시까지 빈틈없이 채워져 있다. 매일.매주 시험을 본다. 여름방학엔 야외 군사훈련을 받는다. 체력이 약한 생도들은 평소에도 모래주머니를 차고 다니기도 한다. 기말고사에 낙제하거나 내부 규율을 지키지 않으면 가차없이 퇴교당한다. 김선홍(육사 28기.중장) 육사 교장은 "미래 육군의 정예 장교를 양성하기 위해 더욱 효율적이고 창의적인 학교로 만들어가겠다"고 말했다.

◆ 영욕의 60년=육사의 모태는 조선경비대훈련소다. 해방 초기 군 간부를 양성하던 군사영어학교가 1946년 4월 30일 폐교되면서 이 훈련소가 설치됐다. 46년 6월 15일 국방부가 국내경비부로 바뀌면서 이 훈련소는 조선경비사관학교로 개칭됐다.

이때만 해도 사관생도는 외국에서 군 생활을 하다 돌아온 사람들로 채워졌다. 일본 육사를 나온 박정희 전 대통령은 2기 졸업생이다. 5기부턴 국내에서 5년제 중학교(현재 고등학교) 이상을 졸업한 민간인을 선발했다. 조선경비사관학교는 6기까지 1254명의 장교를 배출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좌익 성향을 가진 것으로 판명나 정부 수립 후 숙군의 대상이 됐다.

이 학교가 육사로 이름이 바뀐 것은 정부 수립 직후인 48년 9월 5일. 조선경비대가 육군으로 개편되면서다. 이후 육군이 부대 수를 늘리면서 장교의 수요가 급격하게 늘어났다. 이때 군 경력자와 청년단체 단원들이 대거 육사에 들어갔다. 육사 7~10기는 이렇게 배출됐다. 육사가 1년 공식 과정으로 모집한 첫 기수인 10기는 임관을 한 달 앞두고 한국전쟁에 참가했다. 공식 과정 두 번째 기수는 4년제로 입교했지만 20일 만에 전쟁을 맞아 곧바로 전쟁터로 갔다. 그 바람에 정식 육사 기수로 편입되지 못했다. 그래서 '비운의 육사 2기'라 불린다.

육사의 4년제 첫 졸업생은 51년 10월 30일 경남 진해에서 입교한 11기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등 하나회 핵심이 포진한 기수다. 박정희-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지는 3~6공화국의 33년간(60~92년) 육사 출신들은 파워 엘리트로 군림했다.

육사 배출 장교들은 65~73년 베트남전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 당시 육군 소장으로 파병됐던 육사 5기생 채명신 초대 주월한국사령관은 국민적 영웅이었다. 육사 출신 가운데 10%는 6.25전쟁과 베트남전 등에서 목숨을 바쳤다.

김민석 군사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