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테러만은 안 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6면

이집트 시나이 반도 동쪽 해안의 휴양지 다합에서는 24일 폭탄 테러로 24명이 숨지고 한국인 1명 등 수십 명이 다쳤다. 다합에선 26일 주민 수백 명이 모여 테러 규탄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희생자를 기리는 돌비석을 들고 "우리는 평화를 원한다"고 외쳤다. 바다 위 유람선은 '노 테러(No Terrorism)'라는 글자를 뱃전에 새긴 채 떠다녔다.

이날 처참했던 테러 현장에서 만난 타리크 주마(24)는 "반미도 좋지만 이건 아니다. 무고한 한국인도 부상을 당하지 않았는가"라고 힘주어 말했다. 프랑코센터라는 전통기념품 가게 점원인 그의 눈은 테러가 발생한 지 48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벌겋게 충혈돼 있었다.

가게는 아직도 제대로 수습되지 않아 어수선했다. 입구에는 폭탄 테러로 사망한 동료 점원 파크르를 기리기 위해 꽂아놓은 꽃 한 송이가 있었고 그 옆에는 촛불이 타고 있었다. 10여 년을 아저씨처럼 모시고 동고동락하던 선배 점원이었다. 주마는 이날 오전 파크르의 집에 다녀왔다. 유가족을 껴안고 한참 울다 왔다고 한다.

주마는 "테러의 참혹함과 피해를 이번에 확실히 경험했다"며 "전 세계에서 테러가 발생하고 이곳 시나이에서도 여러 차례 일어났지만 직접 당해 보니 정말 큰 비극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의 잘못된 대중동정책을 비난하고 이스라엘을 규탄하는 것도 좋지만 이런 방법은 정당하지 못하다는 것을 이번에 실감했다"고 강조했다. 이슬람권에 속해 있어 은근히 테러범에 동조하기도 했지만 피해를 당해 보니 문제가 심각함을 알게 됐다는 얘기다.

주마는 "앞으로가 더 큰 문제"라며 "자금이야 어떻게든 다시 마련하면 되겠지만 테러가 계속 발생하면 관광객이 줄어 더욱 힘들어질 것"이라고 걱정했다. 이날도 시나이 반도 북부에서 두 건의 자살폭탄 테러가 발생해 4명이 다쳤다.

이런 상황에서도 검푸른 바다 위에는 휴가를 즐기는 관광객 몇 명이 윈드 서핑과 스노클링을 하고 있었다. 다합 주민들은 비록 테러가 발생하기는 했지만 관광객이 계속 찾아오기만을 바랄 뿐이다. 이들에게는 성전이 아니라 관광객이 곧 생명이기 때문이다.

서정민 카이로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