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상원 “주한미군 철수 협상 불가” 트럼프 견제 법안 발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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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미국 상원은 26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의 핵협상 상황을 30일마다 보고하도록 하는 내용의 초당파적 법안을 발의했다. NBC방송 등 미 언론에 따르면 상원 외교위원회 간사인 로버트 메넨데스(민주·뉴저지) 의원과 동아태소위원장인 코리 가드너(공화·콜로라도) 의원은 이날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협상을 의회 차원에서 엄격하게 감시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을 제출했다.

민주·공화 초당파적 법안 제출 #“대북 협상 30일마다 보고하라” #비핵화 목표도 CVID로 못 박아 #“한국, 미군 주둔 분담금 중대 기여”

뚜렷한 북한의 비핵화 조치가 없는 상황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지나치게 기존 원칙에서 후퇴하는 모습을 보이자 의회 차원에서 트럼프 행정부를 통제하겠다는 뜻을 강력하게 내비친 것으로 해석된다.

이 법안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과 행정부는 북한과의 외교 협상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30일마다 서면으로 업데이트해 의회에 보고해야 한다. 법안은 또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협상 원칙도 제시했다. 이들은 “북핵 협상의 목표는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이며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해서는 안 된다” “‘의미 있고 검증 가능한(meaningful and verifiable) 비핵화’가 이뤄질 때까지 ‘최대의 압박’ 캠페인은 물론 경제제재도 계속해야 한다” “향후 북한과의 합의는 의회 비준이 필요한 조약(treaty)이어야 한다”고 명시했다. 또 “주한미군 철수는 협상 불가 항목(non-negotiable item)”이라고 못 박았다.

법안을 제출한 메넨데스 의원은 별도 성명을 통해 “미 정부가 싱가포르에서 비핵화 방식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이 결여된 모호한(vague) 공동선언에 서명한 이후 비핵화를 향한 진행과 관련해 어떤 세부사항도 밝히지 않고 있어 의회의 감독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는 게 명백해졌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후 유세 등에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이끌어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싱가포르 회담 후 2주일 넘도록 그 목표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고, 얼마나 걸릴 것인지 구체적 상황을 의회가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메넨데스 의원은 오는 11월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상원 다수당을 차지할 경우 상원 외교위원장이 될 공산이 가장 큰 인사다.

AP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재능 있는 사람’ ‘자신의 국가를 아주 사랑하는 사람’으로 평가하고 있지만 이 법안에서는 김 위원장이 ‘무자비하고 잔인한 폭군(ruthless and cruel despot)’으로 묘사돼 있다”고 보도했다. 통신은 또 “이 법안의 통과 여부는 불투명하지만 외교적으로 약속해놓고 이를 어겨 온 북한을 변덕스러운 대통령이 어떻게 다룰지에 대한 민주·공화 양당의 우려가 반영된 것”이라며 “북한의 구체적 비핵화 조치가 없는데도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에 동의한 것에 대해 북한에 중대한 양보를 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가드너 의원은 지난 18일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서의 연설에서 “(군사적) 준비와 근육의 기억력을 약화시키는 비용은 그 어떤 훈련 비용보다 훨씬 크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비용 문제를 들면서 한·미 연합훈련을 중단한 데 대해 이견을 제시한 바 있다.

이를 반영하듯 이날 발의된 법안에는 ‘한반도 주한미군에 관한 의회의 인식’이라는 제목의 6조에서 “주한미군은 한반도에 합법적으로 주둔하고 있으며 북핵 협상에서 주한미군 철수는 협상 항목이 돼선 안 된다”며 “한·미의 정기적 훈련과 연습을 포함한 견고한 군사 태세가 동북아 평화·안정에 결정적”이라고 언급됐다. 법안은 주한미군 분담금 문제에 대해서도 “한국은 자기 방어와 주한미군 방어를 위해 중대하게 기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워싱턴=김현기 특파원 luc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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