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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인절 베이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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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1950년대 말 팔다리가 짤막한 아이들이 줄줄이 태어났다. 탈리도마이드 탓이었다. 57년 서독에서 만든 이 수면제를 먹은 임신부들은 기형아를 낳았다. 해표지증(海豹肢症)-바다표범의 물갈퀴처럼 팔다리가 짧은 천형(天刑). 기형아 열 명 중 넷은 1년 안에 사망했다. 62년 금지 약물이 될 때까지 46개국에서 1만 명이 넘는 아이들이 제물로 바쳐졌다.

저주받은 운명이라지만 아이들을 바다표범에 빗대는 것이 안타까웠던 한 오스트리아 의사가 새 이름을 지어줬다. '에인절 베이비'. 성화(聖畵) 속 아기 천사들의 팔다리가 짧은 것에 착안한 것이었다.

"거기 그렇게 내가 있었다. 태어난 지 일주일 된 앨리슨 래퍼. 팔은 양쪽 다 없었다. 다리는 무릎 아래가 없고 넓적다리뼈에 발이 달려 있었다. 해표지증. 불구자라는 말이 끔찍이도 싫었지만, 그 딱지는 19년간 나를 따라다녔다."(앨리슨 래퍼 '내 손안의 인생')

19살 래퍼가 '불구' 딱지를 떼기 위해 한 일은 그림 그리기였다. 22살의 결혼, 보조금을 탐냈던 남편의 폭력, 그리고 이혼. 단지 그리는 것만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었다.

"당신이 정상인들만 그리는 것은 자신을 직시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어느 날 지도교사의 한마디가 가슴을 쳤다.

"충격이었다. 도서관에서 코와 입으로 책을 들췄다. 밀로의 비너스 사진에 눈길이 멈췄다. 양쪽 팔이 없는 고대 그리스 여성의 대리석상. 이것은 바로 내가 아닌가!" 그때부터였다. 래퍼에게 삶의 목표가 분명해진 건.

"아무도 밀로의 비너스에게 새 팔을 만들어서 붙이려고 하지 않는다. 그 자체로 완벽하다고 여긴다. 그러나 장애는 흉하고 결함 있는 것으로 인식된다. 기형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택한 게 사진작가였다. 소재는 자신의 몸. 등에 날개를 붙이고 스스로 '에인절 베이비'가 됐다(작품명 '에인절'). '장애인도 아름답다'. 래퍼는 그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조각가 마크 퀸이 동참했다. 그는 99년 래퍼를 찾아왔다. 네 번의 유산 끝에 절망했던 래퍼가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다섯 번째 출산을 준비 중일 때였다. 당시 마크가 만든 '임신한 앨리슨 래퍼'상은 2005년 트래펄가 광장의 3.55m짜리 대형 조각상으로 재탄생했다. 모성과 장애, 그 절박한 아름다움의 상징이 되어.

그 래퍼가 한국에 왔다. 천형의 다른 이름인 '에인절 베이비'가 아닌 진짜 '천사 같은 아들' 패리스와 함께.

이정재 경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