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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축구와 동전 던지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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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현상 논설위원

이현상 논설위원

“축구는 동전 던지기다.” 축구를 신앙처럼 생각하는 열혈 팬들은 화를 낼 소리지만 엄연한 통계 수치다. 축구 선수 출신 컨설턴트 크리스 앤더슨과 전직 야구 선수 데이비드 샐리(다트머스대)가 2011~2012 시즌 미국·유럽에서 열린 프로 스포츠를 조사한 결과다. 도박사가 승리할 것으로 예상해 배당률이 낮은 축구 클럽이 실제 이긴 비율은 겨우 50% 남짓이었다. 70% 언저리인 핸드볼·농구·미식축구는 물론이고 60% 수준인 야구보다 한참 떨어지는 확률이다. 보스턴대의 연구팀이 1888년 이후 잉글랜드 축구 리그 4만3000경기를 조사해 보니 언더도그(약팀)가 승리한 비율이 45%였다.

독일 뮌헨공대 연구팀도 비슷한 연구 결과를 내놨다. 자국 리그 2500경기를 분석한 끝에 골 6개 중 하나는 ‘행운의 골’이라는 결론을 냈다. 상대 실수나 굴절 등이 없었으면 들어가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그 정도까진 아니지만 골대나 골키퍼의 손에 맞고 들어가거나 불규칙 바운드의 덕을 본 ‘행운 섞인 골’은 44%에 달했다.

한국 축구팀이 러시아 월드컵에서 두 번 연속 패하자 팬들이 화가 났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이 난리가 났고, 선수들의 SNS 계정엔 욕설이 몰렸다. 웬만하면 격려의 말만 하는 방송 해설자들마저 질타를 쏟아냈다. “브라질 월드컵보다 발전한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크로스 연습부터 더 해라” “저런 타이밍에 어떻게 태클할 생각을 하나”…. 밤잠을 설치면서 응원한 국민의 실망감은 당연하다.

하지만 어쩌랴, 축구 승부의 50%가 운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조금 위안이 되려나. 멕시코전 페널티킥을 부른 장현수의 핸드볼 반칙은 심판이 고의가 아니라며 넘어가 줄 수도 있었다. 스웨덴전 김민우의 태클도 VAR(비디오 판정)이 없었으면 페널티킥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한국 축구가 월드컵 4강도 해보고 9연속 본선 출전도 했지만 냉철하게 따지면 온전히 실력 덕분만은 아니다. 2002년은 개최국 이점이 작용했고, 9연속 출전도 1994년 ‘카타르 도하의 기적’이 없었으면 중간에서 끊어졌다. 이번 월드컵에서 행운의 신이 완전히 등을 돌린 것도 아니다. 독일이 추가 시간에 극적인 골을 터뜨려 스웨덴을 이겨주는 바람에 실낱 같은 희망이 남은 것도 우리에겐 운이다.

물론 운을 필연으로 돌리기 위한 반성과 노력은 필요하다. 하지만 끝나고 생각해도 늦지 않다. 일단 화는 삭이고 남은 경기를 즐기자. 축구든 인생이든 자기 뜻대로만은 안 된다는 걸 인정하면 삶이 좀 더 행복해진다.

이현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