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무혐의 결정에 검찰이 납득 못하면 재수사 요구 가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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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가 21일 발표한 검경 수사권의 골자는 이른바 검사의 수사지휘권 폐지다. 경찰에는 수사 과정에서 자율성을 상당 부분 보장하는 대신 검사의 감독·사법통제 권한도 일정 부분 보장하기 위한 목적이다.

검경 상호견제 제도적 장치 마련 #검찰 직접수사는 특수범죄로 제한 #경찰 불송치 사건도 검찰이 기록 검토 #경찰이 검사 비위 영장 신청하면 #검찰은 지체 없이 법원에 청구해야

특히 이번 수사권 조정안 곳곳에는 검찰과 경찰 간 상호 견제, 즉 힘의 균형을 목표로 하는 각종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 있다. 대표적인 예로 경찰이 어떤 사건에 대해 불기소 판단을 내리고 검찰에 송치하지 않기로 결정했을 경우 검사에게 불송치결정문·사건기록등본 등 각종 사건 기록을 보내도록 규정했다. 1차적인 수사종결권을 경찰에 주는 대신 경찰 단계에서 불기소 결정을 내려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미연에 방지하겠다는 의도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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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뿐 아니라 경찰의 불기소 결정이 부당하고 판단될 땐 검찰이 경찰에 시정조치를 요구할 수 있다. 또 신설되는 국가수사본부(가칭)에 ‘수사심의위원회’를 설치해 반기별로 불기소 결정 사건을 심의해 재수사도 하게 한다. 한 경찰 관계자는 “수사종결권이 경찰에 오면서 그만큼 책임도 무거워지는 상황”이라며 “검찰의 감독 역할이 강화되는 측면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한중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번 수사권 조정안은 행정부와 사법부·입법부 간 삼권분립이 철저하게 이뤄지는 미국 제도와 유사하게 사법기관 간 상호 견제와 균형에 입각한 시스템을 설계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며 “검찰과 경찰 입장에선 양쪽 모두 만족할 수 없는 안이 됐다”고 설명했다. 사법기관 간 견제 장치는 올 초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검찰과 경찰·국정원을 아우르는 ‘사법제도 개편안’을 발표한 이후 끊임없이 제기된 ‘경찰 비대화’ 논란에 따른 조치로 보인다.

시·도별 자치경찰제 도입, 수사경찰과 행정경찰로 국가 경찰을 이원화하는 방안도 경찰 견제 장치로 꼽힌다. 이 밖에도 경찰 수사가 미진하다고 판단했을 경우 검찰은 경찰에 보완 수사를 요구할 수 있다. 같은 사건을 검찰과 경찰이 동시에 수사하게 됐을 때는 검찰이 먼저 사건을 수사하게 된다.

검찰 역시 경찰만큼이나 지속적인 견제를 받게 됐다. 특히 검사의 비위에 대해선 경찰의 수사 기능을 대폭 강화했다. 검사 또는 검찰청 직원의 범죄 혐의에 대해 경찰이 적법한 압수수색·체포·구속영장을 신청했다면 검찰은 ‘지체 없이’ 법원에 영장을 청구해야만 한다.

한 검찰 관계자는 “향후 경찰이 법률적 근거 없이 무리하게 압수수색을 들어오더라도 검사들은 무방비 상태로 노출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검찰의 1차 수사권은 ▶비리 사건 ▶부패범죄 ▶경제·금융범죄 ▶공직자범죄 ▶선거범죄 등 5개 분야로 제한된다. 검찰의 1차 수사범위 이외의 고소·고발·진정 사건에 대해선 일반 국민이 검찰에 직접 고소·고발을 하더라도 수사는 경찰이 담당한다. 한 대검 관계자는 “전체 사건 가운데 99%가량을 차지하는 폭행·상해 같은 민생 사건의 경우 경찰만 1차 수사가 가능하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이날 발표된 문재인 정부의 수사권 조정안의 한계점 또한 일각에선 제기되고 있다. 비록 검찰의 1차 수사 영역을 제한했지만 특수·공안 등 검찰의 주요 수사 기능은 사실상 전부 유지됐기 때문이다.

검찰의 직접 수사 기능을 상당 부분 이관받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는 오는 하반기에나 정부 입법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김인회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시켜왔던 특별수사 조직이 아직도 너무 많이 남아 있다”며 “사법기관별 견제와 균형, 검찰권의 정치적 독립성 차원에서라도 공수처 도입은 피할 수 없는 과제”라고 말했다.

김영민·한영익 기자 brad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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