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 여성 42% 가정 폭력 경험…'미투' 어려운 이유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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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 조사 결과 이주 여성 중 42%가 가정 폭력을 경험했으나 그 중 절반 가량은 도움을 요청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픽=국가인권위원회

그래픽=국가인권위원회

인권위가 결혼 이주 여성 900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대상 여성의 42%가 가정 폭력 경험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폭력 유형으로는 욕설 등 언어 학대를 겪은 여성이 81%로 가장 많았고 ▲한국식 생활 방식 강요(41%)  ▲폭력을 행사하겠다며 위협(38%)  ▲생활비를 주지 않는 등 경제적 학대(33%) 순이었다. 성행위 강요(27%)나 성적 수치심을 들게 하는 언동(24%) 등 성적 학대를 경험했다는 응답도 높은 비율을 차지했으며, 본국 방문과 송금을 방해하는(각 26%) 경우도 있었다.

체류 심사에 남편 신원 보증 필요해 #본국 방문·송금 방해도 26.9%

가정 폭력 시 도움을 요청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없다’는 응답(140명)이 ‘있다’는 응답(119명)보다 많았다. 그 이유로는 ▲주변에 알려지는 것이 창피해서(35명)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할지 몰라서(29명) ▲아무 효과도 없을 것 같아서(29명) 등이 꼽혔다.

이주 여성들이 국적 취득을 신청한 시점으로부터 실제 국적 취득까지 소요되는 기간은 평균 23.6개월이었다. 입국한 뒤 시민권자가 되기 전까지 체류 연장을 위해 출입국사무소를 방문할 때 남편의 신원 보증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주 여성은 학대를 받을 경우에도 ‘미투’를 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제기돼 왔다. 체류 연장 심사가 남편의 신원 보증에 달려있어 남편이나 친인척으로부터 성폭력을 당해도 혼인관계가 깨질 것을 우려해 말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결혼 이주 여성이 국내 입국할 때는 결혼이민비자를 통해 체류 자격을 갖추는 경우가 가장 많다. 이들의 76%가 체류 연장 경험이 있었으며, 평균적으로 2.7회 체류를 연장했다. 체류 연장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은 ▲한국어 구사 능력 부족 (17%) ▲짧은 체류 인정 기간(13%) ▲체류 연장 방법이나 정보를 취득하기 어려움 (9%) 순으로 나타났다. 국적을 취득하지 못한 채 체류 기간이 만료되면 불법체류자 신분이 된다.

임선영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정책과 사무관은 “결혼 이민 비자 소지자는 통상 입국 후 2~3년을 체류할 수 있고 그 기간이 끝나면 체류 연장을 하는데 심사 결과에 따라 6개월을 연장받기도, 법적 최장 기한인 3년을 연장받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단기간만 체류가 허용되면 출입국 사무소에 방문해 연장을 신청할 때마다 남편의 도움을 받아야 하고 가족이 해체되면 지원과 보호가 사실상 어려운 것이 이주 여성들의 현실”이라고 덧붙였다.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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