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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현기의 시시각각

싱가포르 회담 3대 의문점+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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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현기 기자 중앙일보 도쿄 총국장 兼 순회특파원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6·12 북·미 정상회담 후 90분간의 ‘트럼프 쇼’는 충격이었다. 회견이 끝난 뒤 한 외신기자는 “horrible(끔찍하다)”이라고 했다. 일본 특파원 친구는 “한국은 (트럼프가) 저래도 괜찮은 거냐”고 되물었다. 별로 할 말이 없었다.

트럼프의 양보, 추가 합의, CVID 발언 #원점에서 무엇이, 누가 바뀌었나 보자

파티가 끝난 지 1주일. 남은 건 무엇일까. 아직도 여러 의문이 머리를 맴돈다. 한편으론 그 해답도 어렴풋이 보인다. 의문점은 크게 세 가지.

가장 궁금한 건 “왜 트럼프는 일방적 양보를 했을까”다. “‘비핵화 원샷’하면 선물을 줄게”라고 하더니 “일단 선물을 줄 테니 ‘선의’를 보여 다오”로 돌변했다. 비핵화의 시한, 로드맵, 검증 방법은 일언반구도 없었다. 한·미 연합훈련을 ‘도발적(provocative)’이라고 규정한 것도 실언인 줄 알았더니, 귀국 후엔 “아주 도발적(quite provocative)”이라고 한술 더 뜨고 있다. 나는 15일 폭스뉴스 인터뷰에 트럼프 양보의 답이 있다고 본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내가 제일 잘하는 건 무역(trade)이다.”

그에게 최고 가치는 결국 ‘돈’이다. 동맹은 하위 순위다. 양보해서라도, 김정은에게 찬사를 보내서라도 일단 북·미 정상 간 단독 파이프를 구축하려 한 최대 이유는 돈에 있었던 것이 아닐까. 북한 문제에 대한 부담 때문에 중국에 무역전쟁을 제대로 걸지 못했던 트럼프가 싱가포르에서 귀국한 뒤 50시간 만에 중국에 500억 달러·25%, 5일 만에 추가로 2000억 달러·10%의 관세 폭탄을 퍼부은 건 무엇을 뜻할까. ‘새로 생긴’ 자신감의 표현이다. 트럼프에게 11월 중간선거의 최대 무기는 비핵화보다 무역 이슈다.

두 번째 궁금증은 ‘공동성명’이다. “왜 그 정도 성명밖에 나오지 않았느냐”가 아니라, “더 담을 수 있는 걸 안 담은 게 아닐까”다. 미사일 엔진 실험장 파괴를 ‘나중에’ 구두로 약속받았다는 트럼프 설명은 궁색하다. 그 정도 내용이면 서명을 미뤄서라도 넣는 게 정상이다. 트럼프 스타일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그래서 워싱턴에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관련 추가 합의가 있었을 것”이란 말이 돈다. 김정은의 북한 내 입장, “비핵화, 중·단거리 미사일은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ICBM만 챙겼느냐”는 비난이 부담스러운 트럼프의 입장을 두루 고려해 공개하지 않고 있다는 의구심이다.

세 번째 의문은 폼페이오 장관의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 발언. 왜 그는 회담 15시간 전 안 될 걸 뻔히 알면서 “미국이 수용할 수 있는 유일한 결과는 CVID뿐”이라고 얘기했을까. 북한에 막판 뒤집기를 당한 것일까, 말 못할 내부 사정이 있었던 것일까. 아직은 상상의 영역이다. 하지만 회담 다음 날 서울에 와 이를 캐묻는 기자에게 “당신 질문은 모욕적이고 터무니없고 우스꽝스럽다”고 한 것은 그의 자존심을 건드렸을지는 모르나 분명 우스꽝스러운 답변이었다.

추가 의문 하나. 선 핵동결을 외치다, CVID와 CVIG(완전한 체제안전보장) 맞교환을 거론하더니 이제는 “CVID는 지구상에서 불가능한 목표” “CVID보다 신뢰구축!”을 외치는 국내 ‘희망론’자들의 ‘다음 논리’는 무엇일까. 추가 의문 둘. 50년 북한 주장을 그대로 옮긴 트럼프의 ‘도발적’ (한·미 연합훈련) 발언이 전 세계에 생방송돼도 우리 외교·국방장관은 찍소리 못한다. 아니, 안 한다. 이게 과연 중재외교인가. 중국으로 날아가 마음껏 등거리 외교를 즐기는 김정은의 모습은 마치 이를 비웃는 듯하다.

머리를 식히고 원점으로 돌아가 보자. 과연 무엇이 변했을까. 누가 변했을까. 이대로 괜찮은가.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