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Y 출장 행보에서 나타난 삼성의 미래 먹거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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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글로벌 경영 행보가 빨라지면서 삼성이 미래 먹거리로 삼는 신성장동력의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지난 2월 집행유예로 풀려난 이후 한 달에 한 번꼴로 총 3차례 해외 출장길에 오른 그는 자동차 전장(電裝ㆍ전자장비), 인공지능, 반도체 역량 강화에 공을 들이는 모습이다.

‘자동차 전장’, ‘인공지능’, ‘반도체’ #삼성 내 사업부문 움직임도 분주

지난 10일 세 번째 출장을 마치고 일본에서 귀국한 그는 우시오전기ㆍ야자키 등 일본 자동차 전장부품 전문업체의 고위 경영진과 만나 신사업 분야 협력방안을 논의했다. 야자키는 자동차용 전원과 통신케이블, 전방표시장치(HUD) 등에서, 우시오전기는 특수 광원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회사들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신성장동력 발굴 행보의 일환으로, 전장 사업 강화에 초점을 맞춘 출장”이라고 전했다.

이에 앞서 그는 출소 후 첫 대외 행보인 지난 3월 유럽ㆍ미주 출장에서는 인공지능(AI) 기업을 집중적으로 둘러봤다. 이 부회장이 유럽에 머무르는 동안 삼성전자는 파리에 인공지능 연구개발(R&D) 센터 계획을 발표했고, 이후 영국ㆍ러시아ㆍ캐나다 등에 인공지능센터 신설, 인재 영입, 스타트업 투자 등에 나서고 있다.

지난달 두 번째 출장에서는 중국으로 가 런정페이 화웨이 회장, 레이쥔 샤오미 회장 등과 회동했다. 이들 기업은 삼성의 경쟁자인 동시에 삼성전자의 메모리 반도체를 사들이는 주요 고객이기도 하다. 이들이 신기술 분야에서 어떤 반도체 부품을 원하는지 수요를 파악하는 등 반도체 공급 다변화를 모색한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김기남 삼성전자 DS부문장(사장) 등 반도체 담당 임원들이 이례적으로 출장에 동행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들 3개 분야에 힘을 쏟는 것은 미래를 대비한 ‘선택과 집중’ 전략이다. 삼성전자는 매 분기 실적 신기록을 새로 갈아치우고 있지만, 반도체 쏠림에 대한 우려가 크다. 이에 새로운 캐시카우를 찾아 메모리 분야에 치우친 수익구조를 분산시키기 위한 포석으로 해석된다.

우선 인공지능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주도할 핵심기술로 ‘포스트 반도체’ 후보 첫손에 꼽힌다. 기존 정보기술(IT)ㆍ가전의 첨단 기능을 구현하고 안정성ㆍ정확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이젠 인공지능 기술이 필수가 됐다. 여기에 헬스케어ㆍB2B(기업간거래) 등 유망 산업으로의 확장성도  크다.

전장 사업은 자동차가 점점 IT 기기화 하면서 주목받고 있다. 자동차에 첨단 인포테인먼트(정보ㆍ오락) 시스템이 탑재되고, 고도의 센싱 기술을 활용해 자율주행까지 가능해지면서 수요가 늘고 있다.

기존 메모리 반도체 사업은 막대한 R&D 투자로 후발업체들의 추격을 허용하지 않는 이른바 ‘초격차 전략’을 강화한다. 이와 함께 전장ㆍ인공지능 등을 위한 차세대 반도체와, 상대적으로 약한 파운드리(위탁생산)와 시스템 반도체에도 힘을 싣기로 했다.

삼성SDS, 의료 인공지능 사업 진출 검토

그의 행보가 활발해지면서 삼성 내 관련 사업의 움직임도 분주해지고 있다. 삼성SDS는 의료 인공지능(AI) 사업 진출을 검토 중이다. 각종 전자건강기록(EHR)을 디지털화하고 분석해 의료진이 보다 정확하고, 수월하게 진료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인공지능 서비스다. 삼성의 자체적인 인공지능 수준이 많이 올라온 데다, 삼성전자의 하드웨어와 시너지도 기대돼 수익성ㆍ성장성이 높을 것이라는 계 업계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이에 대해 삼성SDS 고위 관계자는 “EHR과 관련한 여러 샘플을 분석하면서 사업성을 확인하고 있는 단계”라며 “아직 외부로 알릴 단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전장사업과 관련, 삼성전기는 최근 부산 적층세라믹콘덴서(MLCC) 공장의 생산라인을 자동차 전장용으로 전환하고 있다. MLCC는 전자제품 내부에서 전기의 흐름을 안정적으로 조절하고 부품 간 전자파 간섭현상을 막는 역할을 하는 부품으로 전기차ㆍ자율주행차 등으로 쓰임새가 넓어지고 있다. 삼성전자 역시 올 2월 256Gb(기가비트) 용량의 자동차 전용 메모리 반도체 양산에 돌입했다.

전한석 세계경영연구원(IGM) 이사는 “실적만 놓고 보면 삼성전자가 순항하는 듯하지만, 반도체를 제외하면 중국 기업의 빠른 추격이 위협적인 상황”이라며 “반도체 이후를 떠받칠 차세대 먹거리 산업을 마련하는데 더 속도를 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다음 달 미국 '선밸리 콘퍼런스' 참석할 듯  

한편 이 부회장의 다음 글로벌 행보는 다음 달 미국에서 열리는 ‘선밸리 콘퍼런스’가 유력시된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와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 등 글로벌 핵심 기업의 수장들과 교류를 갖는 자리다. 이 부회장은 2002년부터 15년간 매년 참가해왔지만, 지난해에는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되며 참석하지 못했다. 그는 이번 출장에서 그간 단절됐던 글로벌 네트워크의 복원에 주력할 것으로 알려졌다.

손해용 기자 sohn.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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