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있는아침] '세상이 달라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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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세상이 달라졌다'- 정희성(1945~ )

세상이 달라졌다

저항은 영원히 우리들의 몫인 줄 알았는데

이제는 가진 자들이 저항을 하고 있다

세상이 많이 달라져서

저항은 어떤 이들에겐 밥이 되었고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권력이 되었지만

우리 같은 얼간이들은 저항마저 빼앗겼다

세상은 확실히 달라졌다

이제는 벗들도 말수가 적어졌고

개들이 뼈다귀를 물고 나무 그늘로 사라진

뜨거운 여름 낮의 한때처럼

세상은 한결 고요해졌다



이맘때면 마라톤을 했다. 지금은 어엿한 국립묘지이지만 1980년대 후반만 해도, 마라톤 반환점이었던 4.19묘지 앞에는 시민들보다 경찰이 더 많았다. 세상은 달라졌다. 벗들은 그 시절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 한다. 앞만 보고 달렸던 벗들은 다들 희망에 속았는지 무기력하기만 하다. 옛사랑의 그림자는 잘 보이지 않고, 오늘도 내 눈앞에서 한 시대가 간다.

<이문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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