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내 생각과 다르면 불법”이란 시민단체의 독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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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김도년 산업부 기자

김도년 산업부 기자

31일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규정 위반 혐의에 대한 감리위원회 심의 결과가 나온다. 최종 결정은 다음 달 열릴 증권선물위원회(증선위)에서 내려지지만, 회계 부정 판단에서 감리위 의견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은 아무도 부인하지 않는다. 회계 전문가가 없는 증선위가 전문가들이 모인 감리위 결정을 뒤집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자유주의 국가에선 회계사·회계학자 등 전문가에게 회계 처리의 적법성 판단을 맡긴다. 수시로 변하는 시장 상황을 두루 살펴보고 올바른 회계처리 방식을 찾는 것은 법관보다 시장 전문가의 판단이 더 정확하다는 믿음이 있어서다. 다만, 이때 전문가들은 어떠한 외부 압력에도 노출돼선 안 된다는 전제가 있다.

하지만 삼성바이오로직스에 대한 감리위가 열린 이후, 비전문가 집단의 ‘돌출 행동’이 수차례 목격됐다.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은 이달 초부터 이번 사건을 들어 “증선위까지 다 넘을 수 있을 것”이라고 단정하는 발언을 쏟아냈다. 외유성 출장 논란 당시 청와대의 ‘김기식 지키기’를 모두가 지켜본 상황에서, 그의 발언은 청와대 의중으로 오해하기에 충분했다.

일부 시민단체는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분식회계를 하지 않았다고 판단하는 감리위원은 처벌해 달라”는 주장도 서슴지 않고 있다. 투기자본감시센터는 이런 내용을 적시한 고발장을 지난 29일 검찰에 제출하기도 했다. “내 생각과 다르면 불법”이란 시민단체의 독선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 논란은 감리위 결과와 상관없이 한국 시장이 교훈을 얻어야 할 점이 많은 사건이다. 2011년 도입된 국제회계기준(IFRS)은 기업의 자율적 판단을 중요시하지만, 어디까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지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국내 기업의 현실이다. 기업 입장에선 전문가 검토를 거쳐 내린 판단을 왜 문제 삼는지 의아해하는 상황이 앞으로도 생길 것이다. 반면 국제회계기준이 기업의 자율성을 중요시한다고 해서 보편적인 회계 원칙까지 무시해선 곤란하다는 감독당국의 입장도 십분 이해할 수 있다.

최악의 상황은 ‘삼바 논란’이 회계 쟁점이 아닌 정치 쟁점으로 변질하는 것이다. 회계가 ‘재벌 개혁’이란 정치적 목적에 동원되는 수단으로 전락하면 시장은 망가지게 된다. 마지막 감리위가 열리는 31일은 어떠한 외압 없이 전문가들의 소신 있는 판단을 기다릴 때다.

김도년 산업부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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