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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의 핵가방', 다음 달 싱가포르에서 볼 수 있을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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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마라라고 리조트 방문 당시 핵가방을 운반하는 백악관 군사보좌관의 모습이 일반인의 눈에 띄어 페이스북에 올랐다. [사진 페이스북]

지난 2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마라라고 리조트 방문 당시 핵가방을 운반하는 백악관 군사보좌관의 모습이 일반인의 눈에 띄어 페이스북에 올랐다. [사진 페이스북]

다음 달 12일 북ㆍ미정상회담을 앞두고 개최지인 싱가포르에선 미국과 북한이 28일부터 경호ㆍ의전 등에 대한 사전 실무협상에 들어갔다. 익명을 요구한 전직 청와대 당국자는 “사전 실무협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항 중 하나가 도청 염려없이 본국과 통신할 수 있는 수단을 확보하는 것”이라며 “북한으로선 최고 지도자의 사상 첫 서방권 순방인 만큼 경호 못지않게 통신을 집중적으로 점검할 것으로 보이다”고 말했다.

특히 북한이 통신과 관련해 ‘핵가방’을 챙길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핵가방은 유사시 핵무기 사용 명령을 내릴 수 있는 통신장치를 뜻한다. 가방 안에 핵무기 사용 명령의 적정성을 입증할 수 있는 암호책과 비화기(암호통신장치) 등이 들어있다.

지난해 11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한국을 찾았을 때 미 해군 장교가 핵가방을 들고 트럼프 대통령을 따라 계단을 내려오고 있다. 이철재 기자

지난해 11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한국을 찾았을 때 미 해군 장교가 핵가방을 들고 트럼프 대통령을 따라 계단을 내려오고 있다. 이철재 기자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북한은 체제 수호의 핵심 수단인 핵 통제 체제를 싱가포르로 가져가 미국 앞에서 핵무력 완성을 과시할 수 있다”며 “암호화 기술과 위성통신망에 한계가 있지만 상용 위성전화기로 핵가방의 비화기와 비슷한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북한과 같은 독재국가에선 군 통수권과 핵무기 발사 권한을 다른 누구에게 이임하지 않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항상 지녀야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핵가방의 존재를 밝힌 적은 없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핵 위기가 한창인 1월 1일 신년사에서 “핵 단추가 내 사무실 책상 위에 있다”고 언급했다. 박휘락 국민대학교 정치대학원장은 “핵 단추는 수사적 표현이며, 자신이 명령을 내리면 즉시 핵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통제 체계가 있다고 자랑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통제 체계를 휴대용으로 만든 게 핵가방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월 1일 2018년 신년사를 낭독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김 위원장은 '핵 단추'를 언급했다. [사진 조선중앙통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월 1일 2018년 신년사를 낭독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김 위원장은 '핵 단추'를 언급했다. [사진 조선중앙통신]

김 위원장이 핵가방과 함께 회담장에 입장하면 북ㆍ미정상회담이 북한의 비핵화 협상이 아니라 북ㆍ미간 핵군축 협상으로 비쳐지는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게 신 센터장의 분석이다.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 공사는 14일 “향후 북한 비핵화는 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ingㆍ완전한 비핵화)가 아닌 SVID(Sufficient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ingㆍ충분한 비핵화), 핵 위협을 감소시키는 핵 군축으로 갈 가능성이 대단히 크다”고 말했다. 박 원장은 “핵가방까지는 아니더라도 북한은 싱가포르에서 핵무기를 통제하는 수행원과 통신수단을 은근히 드러내는 방법을 고민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북한의 핵가방은 트럼프 미 대통령을 자극할 수 있는 너무 위험한 카드”(김진형 전 합참 전력부장)라는 의견도 있다.

미국 스미소니언 박물관 메거진에서 소개한 미국 대통령 핵가방 [사진 스미소니언 박물관]

미국 스미소니언 박물관 메거진에서 소개한 미국 대통령 핵가방 [사진 스미소니언 박물관]

핵가방의 시초는 미국이다. 미국은 1950년대부터 무게 20㎏의 핵가방을 운용했다. 미국 대통령이 가는 곳엔 언제나 ‘뉴클리어 풋볼’이라는 별명의 핵가방을 들고 있는 장교가 따라다닌다. 지난해 1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미국의 핵가방을 회의장에 반입하는 문제를 놓고 미국과 중국이 몸싸움을 벌인 적도 있었다.

러시아도 옛 소련 시절이었던 1983년 핵가방을 만들었다. 러시아의 핵가방은 미제 ‘샘소나이트’ 제품이라고 한다. 러시아 대통령 취임식 때 전임과 신임 대통령이 핵가방을 주고 받는 의식을 치른다.

2012년 러시아 대통령 인수인계식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신임 대통령(오른쪽열 왼쪽)이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전임 대통령(왼쪽열 가운데)으로부터 핵가방을 넘겨받고 있다. [사진 러시아 대통령실]

2012년 러시아 대통령 인수인계식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신임 대통령(오른쪽열 왼쪽)이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전임 대통령(왼쪽열 가운데)으로부터 핵가방을 넘겨받고 있다. [사진 러시아 대통령실]

중국의 핵가방은 베일에 가렸다. 김태호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중국은 시진핑 국가주석이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자격으로 핵무기를 직접 통제한다”며 “핵가방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철재 기자, 박용한 군사안보연구소 연구위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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