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SR 사장 후보 모두 코레일 출신 … “오영식의 철도개혁 역주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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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코레일과의 통합에 반대하며 갈등을 빚다 물러나게 된 이승호 SR(수서고속철도) 사장의 후임으로 코레일 임원 출신 2명이 추천됐다. 또 코레일이 현재 공석인 SR의 상임이사 두 자리도 자사 출신 간부들을 앉히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렇게 되면 코레일은 통합 대상인 SR의 운영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중앙선데이 5월 5일자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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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철도업계에 따르면 최근 오영식 코레일 사장은 이승호 SR 사장의 후임으로 유재영(56) 전 코레일 부사장과 권태명(58) 전 코레일 광역철도본부장을 추천했다. 코레일은 SR의 지분 41%를 가지고 있는 1대 주주로 사장 추천권을 갖고 있다. 규정상 사장 후보는 복수로 추천한다.

이승호 사장, 통합 반대하다 밀려나 #코레일, 유재영 전 부사장 등 추천 #SR 이사 둘도 코레일 출신 임명 추진 #통합 추진과정 딴 목소리 미리 차단

유 전 부사장은 행정고시 31회 출신으로 철도청 부산철도차량정비창 관리과장을 시작으로 코레일의 여객본부장, 전략기획실장 등 요직을 두루 역임했다. 권 전 본부장도 83년 철도청에 입사해 코레일 부산경남본부장, 고객가치경영실장 등을 거쳤다.

SR 사장은 검증 과정을 거친 뒤 SR 이사회에서 선임하게 된다. 익명을 요구한 철도업계 관계자는 “오영식 사장이 SR 사장으로 유 전 부사장을 임명하고 싶어한다는 얘기가  많이 나왔다”며 “이번 사장 후보 추천도 오영식 사장의 SR 통합 의지가 상당히 반영된 결과”라고 전했다.

앞서 국토교통부는 당초 민간기업이던 SR이 올 초 공공기관으로 전환된 것을 계기로 이 사장에게 퇴진을 요구했고, 결국 이 사장은 지난달 사의를 표명했다. 하지만 철도업계 안팎에서는 이 사장이 현 정부가 추진하는 코레일·SR 통합에 반대했기 때문에 사실상 밀려나는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이 사장의 사표는 아직 수리되지 않았다. SR 관계자는 “이사회 규정상 후임 사장이 임명되면 물러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코레일이 또 현재 공석인 SR의 상임이사 두 자리(영업본부장, 기술본부장)에 코레일 간부 출신들을 임명하기 위한 절차를 밟고 있는 사실도 밝혀졌다. 현재 SR 이사회는 이 사장 등 3명으로 구성돼 있다. 이 가운데 코레일 출신은 한명 뿐으로 비상임이사를 맡고 있다.

하지만 코레일이 추천한 사장에다 상임이사 두 명까지 새로 임명되면 이사회 5명 중 4명이 코레일 출신으로 채워지게 된다. 비상임이사를 해촉한다고 해도 4명 중 3명이 코레일 출신이어서 사실상 이사회를 장악하는 수준이다. 이렇게 되면 향후 통합 추진 과정에서 SR이 정부나 코레일이 가는 방향과 다른 목소리를 내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사장 추천과 상임이사 임명 과정 등이 모두 국토교통부와의 협의를 통해 이뤄졌다는 점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철도 경쟁체제 도입의 필요성을 외치며 코레일과 철도노조 등의 강한 반발을 무릅쓰고 2016년 말 SR을 출범시킨 국토부가 이제 와서 무책임하게 태도를 바꾼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국토부는 또 지난달 코레일과 SR의 통합을 염두에 둔 ‘철도 공공성 강화를 위한 철도 산업구조 평가’라는 제목의 연구 용역도 발주했다. 조만간 용역을 수행할 기관을 선정할 예정이다. 국토부는 이 용역에서 코레일-SR 간 경쟁 체제로 인해 공공성이 훼손됐는지 여부 등을 파악하게 되며, 이를 바탕으로 코레일과 SR의 통합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김황배 남서울대 교수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시작된 철도구조개혁의 취지를 훼손하는 행위들이 계속되고 있다”며 “자칫 이런 식으로 일방적으로 통합이 이뤄질 경우 경쟁이 없어져 운영 효율성이 떨어지는 데다 조직 자체만 비대해지는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강갑생 교통전문기자 kks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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