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미국, 한국에 비핵화 너무 깊게 들어가지 말라고 요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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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 국무총리는 27일(현지시간) 북·미정상회담의 의제인 북한 비핵화 방안과 관련해 “미국이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때부터 비핵화 문제와 관련해선 한국이 너무 깊게 들어가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며 “우리가 나서서 사태가 꼬일 수 있다는 문제도 있지만 미국에 핸들을 주는 게 좋겠다는 판단에서 우리 정부가 발언을 자제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순방 중 영국 런던에서 특파원 및 수행 기자단과 가진 오찬간담회에서다.

이낙연 국무총리(오른쪽에서 두번째)가 런던에서 특파원 및 수행기자단 간담회를 갖고 현안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이낙연 국무총리(오른쪽에서 두번째)가 런던에서 특파원 및 수행기자단 간담회를 갖고 현안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이 총리는 싱가포르에서 북·미정상회담이 열릴 경우 남·북·미 정상회담이 이어서 열릴 가능성과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이 싱가포르에 갈 징후는 아직 없다"며 “(북미정상회담에서) 남북 종전선언까지 진도가 안 나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유럽 순방 중 런던서 특파원·수행기자 간담회 #"문 대통령 싱가포르행 징후 아직 없어" #"판문점서 북미실무협의, 한국 역할 용인하는 것" #"서훈 눈물, 北도발은 대화 신호라며 마음 고생한 때문" # #

 북·미정상회담 개최 준비를 위한 북·미 간 실무회담이 판문점에서 열리고 있다는 소식과 관련해 이 총리는 "판문점의 의미가 이번 국면에서 대단히 커지는 것이자 한국의 역할을 용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문답.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단계적 비핵화와 미국의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 사이의 괴리가 좁혀질 수 있다고 보나.
“문 대통령도 (2차 남북정상회담 관련 회견에서) 비핵화 방안에 대해 자세히 말하지 않았는데, 미국이 한국에 너무 깊게 들어가지 말라고 요청했다. 자기들이 주인공이 되고 싶은 것이고, 비핵화에 대해 트럼프 행정부는 굉장히 집착을 갖고 있다. 판문점 선언의 '완전한 비핵화와 핵 없는 한반도'를 목표로 한다는 표현도 미국과 협의가 이뤄진 내용이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26일(현지시간) 오후 영국 런던 템즈 강변 옆 공원에 있는 한국전 참전기념비를 찾아 헌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낙연 국무총리가 26일(현지시간) 오후 영국 런던 템즈 강변 옆 공원에 있는 한국전 참전기념비를 찾아 헌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 북·미정상회담에 이어 남·북·미 정상회담과 종전선언이 곧바로 이어질 수 있을까.
“문 대통령도 북·미정상회담이 성공한 뒤의 수순을 별도의 단계로 보고 있다. 종전선언에 대해 미국은 우리보다 좀 더 까다롭게 볼 수 있다. 한국인들은 평화 확보하는데 선언 자체의 의미가 있다고 보지만, 미국은 여러 가지로 볼 대목이 있을 수 있다. 지금 단계에서 한꺼번에 논의하는 것은 일을 복잡하게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통일각에서 열린 2차 남북정상회담

통일각에서 열린 2차 남북정상회담

- 6·12 북미정상회담을 위한 북·미 실무회담이 판문점에서 진행되고 있는데.
 "북·미정상회담을 위한 실무회담은 의전과 의제 두 가지 측면에서 협의가 있어야 하는데, 의전 협의는 동선이나 경호 문제이기 때문에 현장인 싱가포르에서 해야 한다. 의제 협의란 중간에 최고지도자의 결심을 받아야 할 때가 있다. 양쪽 모두에게 그 게 가능하거나 편리한 장소를 골라야 하는데, 그것이 판문점이라는 거다. 판문점이라면 북측의 실무자들은 평양에서 출퇴근하고 미국 실무자들은 서울에서 출퇴근하게 되는 것으로, 이 자체가 대단히 중요한 전개다. 의제 협의의 장소로 판문점이 활용되고 있다면 판문점의 의미가 이번 국면에 대단히 커지는 것이고, 우리가 협의의 직접 당사자는 아니지만 우리의 역할이 수용될 여지가 있는 것이다."

-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회담 취소에 이어 재개 가능성 언급까지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유럽 순방 중 해외 인사들의 반응은 어땠나.
“비교적 균형감 있게 외교 문제를 보는 오스트리아에서도 총리와 대통령으로부터 기자회견 하듯 질문을 많이 받았다. 현재 북한 비핵화 관련 당사자는 문 대통령과 김 국무위원장, 트럼프 대통령 세 사람인데 모두 회담에서 이탈했을 때 정치적으로 위험 요소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도 북·미정상회담 등을 성공시켜야 할 이유가 강하다. 밑져야 본전이 아니다. 그래서 판이 안 깨질 것 같다.”

- 평창올림픽 때 남한을 방문한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을 만났는데 어땠나.
“잘 자란 분이고 굉장히 조신하며 예절 바르더라. 끊임없이 상대를 배려하는 모습을 보였다. 오찬 때 바로 옆자리에 앉았는데 화장을 거의 하지 않은 선한 인상이었다.”

서훈 국정원장이 지난달 27일 오후 판문점 평화의 집 앞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판문점 선언이 끝난 뒤 눈물을 훔치고 있다. [중앙포토]

서훈 국정원장이 지난달 27일 오후 판문점 평화의 집 앞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판문점 선언이 끝난 뒤 눈물을 훔치고 있다. [중앙포토]

- 서훈 국정원장과 김영철 북한 통일전선부장이 2차 남북정상회담에 단독 배석했는데,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당시 서 원장은 눈물을 보이더라.
“서 원장의 눈물은 감격스러워서 일수도 있지만 그동안 마음 고생을 했기 때문일 수도 있을 거다. 북한이 지난해 미사일 발사시험 등 긴장을 계속 고조시킬 때 우리 정부 내에서도 강경 대응 기조가 우세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북한이 긴장을 높이는 행위가 대화를 위한 신호일 수 있다는 의견을 거의 유일하게 낸 사람이 서 원장이다. 언젠가 문 대통령을 만났더니 ‘긴장이 극으로 치달으면 그 뒤에는 평화밖에 없지 않으냐'고 말하더라. 지난해부터 진행돼온 상황을 보면 그런 판단이 맞아떨어지고 있는 셈이다.”

런던=김성탁 특파원 sunt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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