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방탄의원단’의 방탄복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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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5호 35면

강민석 논설위원

강민석 논설위원

‘방탄(防彈)’이란 말이 요즘 국민 속을 박박 긁어놓고 있다. 얼마 전 국회가 사학재단 공금횡령, 강원랜드 채용비리 연루혐의를 받고 있는  자유한국당 홍문종-염동열 의원 체포동의안을 부결시키면서 ‘방탄국회’를 오랜만에 재현했다.

방탄. 총알을 막는다는 뜻이다. 정치권에선 아주 유래가 깊은 말이다. 방탄국회 이전에 먼저 방탄내각이 있었다.1963년 대선에서 박정희는 윤보선을 이기고 당선한다. 하지만 15만표 차이에 불과했다. 정치적 위기상황에서 그는  일종의 탕평인사로 난국을 타개하려 했다. 육당 최남선의 동생이자 비판적 언론사 사장(동아일보)이었던 최두선을 국무총리로 임명했다. 그때 야당과 언론이 최두선 내각을 ‘방탄내각’이라 불렀다. 방탄에도 ‘좋은 방탄’과 ‘나쁜 방탄’이 있다. 이때는 전자에 가깝다. 하지만 방탄내각은 6개월 만에 약발이 다했는지 정일권의 ‘돌격내각’에 자리를 비켜줬다.

방탄국회는 불체포특권(헌법 44조), 체포동의안과 한 세트다. 국회 회기 중 의원들을 체포할 수 없는 점을 노리고 체포영장 집행을 막으려 소집한 국회가 방탄국회다. 하지만 이번 5월 국회는 추가경정예산안과 드루킹특검법이라는 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국회였으니 엄밀히 말하면 방탄국회는 아니다. 오히려 방탄국회보다는 ‘방탄의원단’이라는 이름이 더 어울린다. 방탄소년단 보기에 부끄러운 이름이겠지만. 방탄소년단은 1020세대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억압을 막아내겠다는 차원에서 방탄이란 말을 쓴다. 하지만 방탄의원단이 막으려 한 건 고작 체포영장이다.

그런 방탄의원단을 보호해주는 게 무기명투표제다. 우리 국회법에는 인사문제는 무기명으로 표결한다는 이해 못 할 조항이 있다. 욕을 먹어도 단체로 먹으니 욕먹을 줄 알면서도 욕먹을 일을 하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작년 하원에서 부결된 트럼프 대통령 탄핵안조차 누가 찬성하고 반대했는지 언론에 명단이 쫙 실렸다. 하원의 모든 표결이 기명투표이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손혜원 의원이 체포동의안을 포함, 국회의 모든 표결을 기명투표로 하도록 국회법 개정안을 냈지만 본 척도 않는 분위기다. 좋게 말하면 오랜 상부상조의 전통을 이어가겠다는 것이고, 정확히 말하면 카르텔을 깨지 않고 작당(作黨)을 계속하겠다는 것이다. 무기명투표제를 위한 핑곗거리야 있겠지만 아무리봐도 방탄의원단이 여론의 십자포화를 견뎌 낼 수 있게 하는 ‘방탄복’일 뿐이다.

강민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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