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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건강염려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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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현상 논설위원

이현상 논설위원

아는 게 병, 모르는 게 약이라 했던가. 건강에 대한 한국인의 걱정은 유별난 데가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사에 따르면 2015년 한국인 중 자신의 건강상태가 양호하다고 생각하는 비율은 32.5%에 그쳤다. OECD 평균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치다. 하지만 평균수명은 OECD 상위권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김치와 건강염려증이 한국인을 장수하게 만든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건강염려증’은 우리나라에서 한 해 4000명 가까이 진단받는 실제 질병이다. 자신이 심각한 질병에 걸렸거나 걸릴 수 있다는 공포에 시달려 병원을 전전하는 강박 장애다. 이 병의 영어 단어 ‘Hypochondriasis’의 어원은 ‘늑(肋)연골 아래’를 뜻하는 그리스어다. 히포크라테스는 인간의 몸을 구성하는 네 액체(혈액·점액·황담즙·흑담즙) 중 흑담즙이 늑연골 아래, 즉 복부에 쌓이면 우울증에 걸린다고 생각했다.

건강염려증은 괴질까지 만들어낸다. 바로 2000년대 초 미국에서 논쟁이 된 ‘모겔론스 증후군’이다. 한 여성이 “두 살짜리 아들의 몸에서 실 같은 섬유가 돋아나는 악창(惡瘡)에 시달리고 있다”며 17세기 프랑스 문헌에서 딴 병명까지 스스로 붙였다. 비슷한 증상의 환자 수천 명이 속출하면서 의학계 논쟁으로 번졌다. 결국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나서 논란을 정리할 때까지 10년의 세월이 걸렸다. 실 같은 섬유는 옷에서 떨어져 나온 것이고, 악창은 환자 스스로 잡아 뜯거나 긁어서 생긴 상처로 판명됐다.

라돈 침대 파문으로 한국인의 건강염려증이 더 도질 조짐이다. 두드러기, 가려움증, 만성피로, 갑상샘 이상 같은 각종 증상을 라돈 탓으로 의심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한다. 모유 수유까지 걱정하는 산모도 있다. 이들에게 “라돈이 위험하긴 하지만 아직 폐암 이외 다른 질병과는 관련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설명이 안심될 리 없다. 오히려 “이번 사태를 국가적 위기, 준재난으로 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솔깃할 터다. 그럴 만도 하긴 하다. 농약 가습기 살균제, 살충제 계란, 독성 생리대 파동을 연이어 겪었던 국민이니.

하지만 위험성을 과장하는 것은 금물이다. 지나친 걱정이 흑담즙처럼 쌓이면 없던 병도 생긴다. 개인의 몸뿐 아니라 사회에도. 방사선은 합리적인 선 안에서 가능한 한 노출량을 줄이라는 권고가 있다. 이른바 ‘알라라(ALARA, As Low As Reasonably Achievable) 원칙’이다. ‘합리’의 선을 명확하게 제시하는 것이 정부와 전문가의 몫이다.

이현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