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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레어템 기념주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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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남중 기자 중앙일보
김남중 논설위원

김남중 논설위원

기념주화의 몸값을 가르는 건 희소성과 스토리다. 발행 성격에 따라 관심의 정도가 다를 수는 있다. 소장 가치는 별개다. 남발로 희소성이 상실되면 발행가에도 못 미치는 천덕꾸러기가 되기 십상이다. 흥미로운 얘깃거리가 얽혀 있으면 귀하신 몸 대접을 받는다. 요컨대 ‘레어템(희귀재)’ 여부에 기념주화의 가치가 달렸다는 얘기다.

1970년 발행된 한국 첫 기념주화 ‘대한민국 반만년 역사 기념주화’가 딱 그런 경우다. 금화와 은화 12종 세트인데 외국에서만 팔린 데다 소량만 발행됐다. 배경엔 북한과 얽힌 스토리가 있다. “북한이 금·은 기념주화를 만들려고 한다”는 정보를 들은 박정희 대통령이 ‘선제 대응’ 특명을 내렸다는 거다. 당시 기념주화 제조 기술이 없어 독일 업체에 맡겨 급하게 발행이 진행됐다. 그 과정 자체가 1급 기밀이었던 탓에 발행 사실도 뒤늦게 알려졌다. 현재 12종 세트는 거의 종적을 감춘 상태다. 화폐 수집가가 소장하고 싶은 레어템 기념주화 1순위인 까닭이다. 재작년 3월 화동옥션 경매에서 4100만원에 거래됐다. 발행 당시 액면가는 6만5000원이다.

기념주화 발행 시점의 불운과 사고가 외려 몸값을 뛰게 한 사례도 적잖다.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기념주화가 대표적이다. 하필이면 같은 해 열린 월드컵에 묻히다 보니 판매가 부진한 건 당연지사였다. 설상가상으로 판매 대행업체마저 부도가 났다. 예상 발행량의 절반도 못 팔았으니 발행 주체로선 억세게 운 없음을 탓할 도리밖에 없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수집가들은 반겼다. 희소성으로 가치가 올라서다. 발행가 144만원짜리 6종 세트가 요즘 3배를 웃도는 490만원대에 거래된다고 한다.

북·미 정상회담 개최를 둘러싼 ‘세기의 밀당’으로 북·미 정상회담 기념주화가 롤러코스터를 타는 모양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정상회담 취소 발표 직후 백악관 기념품 쇼핑몰은 기념주화 가격을 19.95달러로 20% 내렸다. 떨이 판매 낌새가 다분하다. 하지만 2차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 재추진 공식화에 이르는 남·북·미 간 반전의 반전이 숨 가쁘다. 이 ‘역사적 스토리’의 희소가치에 베팅하는 이가 숱할 듯싶다.

트럼프 대통령은 저서 『거래의 기술』에서 “일을 성공시키는 마지막 열쇠는 약간의 허세”라 했다. 작금의 막판 기싸움이 기념주화에 한글로 새긴 ‘평화회담’ 성사를 겨냥한 그 ‘약간의 허세’라면 좋겠다. 정상회담 기념주화가 레어템이 되든 말든 무에 대수겠냐만 한반도의 운명이 하도 엄중하기에 거는 기대다.

김남중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