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참관, 한국 취재단만 제외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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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공동취재단이 21일 김포공항 출국장에서 베이징 출국에 앞서 취재진과 인터뷰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공동취재단이 21일 김포공항 출국장에서 베이징 출국에 앞서 취재진과 인터뷰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한국 취재진이 북한의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현장을 취재할 수 있을지 불투명해졌다. 21일 밤까지 북한이 한국 취재단 입국 허가를 내주지 않아서다. 이에앞서 통신사 1곳과 방송사 1곳의 기자 8명으로 구성된 공동취재단은 이날 김포공항을 통해 중국 베이징으로 출국했다. 북한이 지난 15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명의의 통지문을 통일부로 보내 22일 국제 기자단을 베이징에서 전용 비행기로 원산 갈마 비행장까지 이송하겠다고 밝힌 데 따른 것이다.

하지만 백태현 통일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정부는 오늘 판문점 연락사무소 통화 개시와 함께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행사에 참석할 우리 측 기자단 명단을 통보하려 했으나, 북측은 아직까지 통지문을 접수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북측 연락관은 “받은 지침이 없었다”며 접수를 거절했다고 한다. 통일부는 18일에도 취재단 명단 접수를 시도했으나 북측이 응하지 않았다. 이에대해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정부는 기자단의 방북을 위해 노력할 것이며 북측도 다시 한 번 심사숙고해서 긍정조치 취해줄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날 판문점 연락 채널이 통상 종료되는 오후 4시를 넘겨서까지 연락관을 대기시킬 예정이었지만, 북한은 더이상 주고받을 연락이 없다며 문을 닫았다. 정부는 22일 다시 판문점 채널을 통해 명단을 통보할 계획이지만 북한의 태도변화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당초 북한은 23~25일 중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기하겠다고 밝히면서 현장에 국제기자단을 초청했다. 대상도 한·미·중·러·영 기자들로 특정했다. 하지만 북한은 이후 유독 한국 취재단에 대해서만 절차를 진행하지 않고 있다. 명단 접수 거부는 물론이고, 취재 범위와 절차 및 안전 상황에 대한 문의에도 일체 묵묵부답이다. 북한 당국은 다른 나라 기자들에 대해선 22일 오전 9시 고려항공을 이용해 베이징에서 원산으로 이동하는 일정을 공지하고 세부사항도 잠정 확정했다.

북한의 한국 기자단 취재 거부는 북한이 최근 대남 공세를 강화하는 것과 관련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북한은 연례적으로 진행되는 한·미 연합훈련인 맥스선더를 문제삼아 16일로 예정됐던 남북고위급회담을 일방적으로 취소했다. 17일엔 이선권 조국평화통일위 위원장이 “엄중한 사태가 해결되지 않는 한 (한국과) 대화하지 않겠다”고 엄포를 놨다. 이런 연장선상에서 한국을 압박하기 위한 수단으로 한국 취재단을 막았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정부는 한국 언론의 풍계리 취재 문제가 모처럼 조성된 남북관계 개선 국면에서 걸림돌로 작용할까봐 노심초사하는 분위기다. 공동취재단이 21일 베이징에 도착한 직후 주중 북한 대사관 근접 취재를 시도하려 하자, 우려를 표시하기도 했다. 한국 기자들의 취재 시도가 북한을 압박하는 것처럼 비춰질 경우 부정적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한 대북소식통은 “끝까지 입장을 명확히 하지 않으면서 상대 애를 태우는게 북한이 잘 쓰는 전술”이라며 “저자세를 보일수록 북한이 원하는대로 끌려다니게 된다”고 우려했다.

외신 기자들이 타는 22일 오전 고려항공편에 한국 취재단이 탑승하지 못할 경우 베이징에서 원산으로 이동할 수 있는 정기항공편은 없다. 베이징 서우두공항과 평양 순안 공항을 오가는 고려항공이 1주일에 5번 운항할 뿐이다. 한국 기자단의 취재가 끝내 무산될 경우 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북·미 간 중재자론’도 빛이 바랠 수 있다.

다만 한 당국자는 “북한이 풍계리 폐기 일정을 25일로 늦추고 한국시간으로 23일 새벽에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의 결과를 지켜본 뒤 한국 기자들의 풍계리 방문을 최종 결정할 것 같다”며 “시간이 없으면 기자단이 비자없이 개성공단을 통해 풍계리를 방문하는 방법도 있다”고 말했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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