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사상자 수천 명인데 … 美 정부 "하마스 탓"

중앙일보

입력

14일 팔레스타인 시위대에 이스라엘군이 무력으로 대응해 수천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AFP=연합뉴스]

14일 팔레스타인 시위대에 이스라엘군이 무력으로 대응해 수천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AFP=연합뉴스]

미국이 이스라엘 주재 자국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긴 14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시위에 이스라엘군이 무력 대응해 수천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그런데도 미국 정부가 이를 “하마스 탓”이라고 공식적으로 발표해 논란을 낳고 있다.

이스라엘 주재 美 대사관 예루살렘 이전 #팔레스타인 시위대에 이스라엘군 발포 #국제사회 비난에도 미국은 이스라엘 두둔

로이터통신 등 외신은 팔레스타인 당국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이스라엘군의 총격과 최루탄 공격으로 최소 58명이 사망하고 2700여 명이 다쳤다”고 보도했다. 사망자 중에는 어린이도 포함되어 있으며, 이날 사상자 수는 2014년 7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폭격 이후 가장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일방적으로 이스라엘을 두둔하고 나섰다.

라즈 샤 백악관 부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비극적인 죽음의 책임은 전적으로 하마스에 있다”고 밝히고 “하마스는 의도적으로 이런 (이스라엘의 무력) 대응을 유발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하마스는 이스라엘에 대항해 오랫동안 투쟁을 벌여 온 팔레스타인의 무장 정파로, 이스라엘과 미국은 이들을 테러단체로 규정하고 있다.

샤 부대변인은 또 “하마스는 가자지구에서의 이런 끔찍한 상황에 대해 책임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며 “그들이 멈추길 바란다”고 비난을 이어갔다. 그러면서 “이스라엘은 스스로 방어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이스라엘군의 공격을 합리화했다. 이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발언과 같은 것이다.

그뿐만 아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이번 사태에 대해 성명을 내려 했지만, 이 또한 미국의 반대로 성사되지 못했다.

14일 미국 대사관 예루살렘 이전 개관식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왼쪽)와 인사를 나누고 있는 이방카 트럼프 [EPA=연합뉴스]

14일 미국 대사관 예루살렘 이전 개관식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왼쪽)와 인사를 나누고 있는 이방카 트럼프 [EPA=연합뉴스]

미국 정부의 이런 반응은 국제사회의 대응과는 상반된 것이다.

이날 유혈사태 직후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분쟁은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며 “‘두 개의 국가’ 외에 플랜B는 없다”고 강조했다. 예루살렘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공동 수도로 인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등 주요 유럽 국가의 지도자들 또한 이스라엘군의 폭력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들은 “가자지구에서 발생한 유혈사태에 대해 깊이 우려한다”는 입장을 내놓은 뒤, 역시 ‘두 개의 국가’ 해법을 강조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부 장관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미국 대사관의 예루살렘 이전에 대해 우려한다는 의견을 이미 여러 차례 표했다. (이번 사태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지도자 간 직접 대화를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아랍권 국가들은 서로 분열돼 있음에도 이 문제에서만큼은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아랍연맹, 이슬람협력기구 등은 미국 대사관 이전을 국제법 위반이라고 비난하며 “팔레스타인 주민의 권리를 해치지 마라”고 강하게 경고했다.

최근 미국의 이란 핵합의 탈퇴 선언으로 미국과 크게 갈등을 빚고 있는 이란의 반응은 특히 거칠었다. 이란 정부는 이스라엘이 그간 팔레스타인 주민들에 대해 수없이 많은 대학살을 벌여왔다며 이날을 ‘대수치의 날’이라고 개탄했다.

한편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은 이번 사태를 두고 “이스라엘의 대학살”이라 비난한 후, 사흘간의 애도 기간을 가지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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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주리 기자 ohma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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