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선언적 독백에서 벗어나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9면

지난 3일부터 6일까지 그리스의 로도스 섬에서 '문명간 대화(dialogue of civilizations)'라는 주제로 국제회의가 열렸다. 문명간 충돌로까지 표현되는 오늘의 국제정세 속에서 진정한 세계 평화를 위해서는 서로의 문명을 인정하고 이해하려는 노력과 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 이번 회의의 주된 동기였다.

그러나 같은 민족끼리도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 어려운 현실에서 이(異)문화를 인정하고 이해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주장 또한 심도 있게 논의됐다. 따라서 '문명간 대화'를 위해서는 '문명적 대화(civilized dialogue)'가 선행돼야 한다는 점이 회의의 중요한 결론의 하나로서 강조됐다.

문명적 대화란 우선 자신과 다른 상대방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하며, 서로에 대한 이해가 쉽지 않기 때문에 대화 자체도 쉽지 않으리라는 점을 전제로 하는 대화를 의미한다. 이러한 전제가 결여된 대화는 선언적 독백에 불과할 뿐이다.

***서로 다른 문화부터 먼저 인정을

이러한 맥락에서 지난 8월 말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6자회담은 문명적 대화가 아닌 선언적 독백의 장이었다고 볼 수 있다. 북한과 미국은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한반도의 비핵화라는 대명제에는 일치된 목소리를 내었지만 이를 추구하는 방법론에 있어서는 자신의 주장에만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북한은 미국이 말할 것을 미리 가정해 쓰여진 원고에만 매달리고 상대방의 견해에는 관심을 갖지 않았다. 미국 또한 북한에 대한 안보보장과 북한의 핵 폐기를 동시에 할 것인가 아니면 병행할 것인가 하는 어쩌면 쉽게 해결될 수도 있는 문제에 대해 한치의 양보도 하지 않았다.

회담 후 공동성명을 채택하지 못한 점이나, 북한이 제기한 회담 무용론 내지 심지어 핵 억제력 강화 등의 주장은 대화가 아닌 독백에 가까웠던 회담의 성격에 비추어 볼 때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불행히도 미국과 북한의 선언적 독백외교는 두 국가뿐 아니라 전 세계를 어려움으로 몰아가고 있다. 부시 정권의 외교정책은 '다자주의적 일방주의'로 요약된다. 이는 미국의 일방적 외교노선에 국제적 협력을 강요하는 다자주의로 포장된 일방주의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이 서로 모순돼 보이는 다자주의와 일방주의를 결합해 행동에 옮길 수 있었던 것은 만 2년이 돼 오는 9.11 테러 덕분이었다. 하지만 이라크 사태 이후 엄청난 비용이 요구되는 전후처리와 함께 전 세계적으로 파급되고 있는 반미감정 때문에 미국의 일방주의적 외교정책은 한계에 직면하고 있는 듯하다.

북한은 그간 사회주의가 갖고 있는 자본주의에 대한 도덕적 우월감에 집착했는지, 아니면 가난한 살림에 염치 없음을 자존심과 체면으로 치장했는지는 몰라도 상대방을 존중하는 태도와 행동을 보여주지 못했다. 상대에 대한 협력과 신의 대신 그들만의 공허한 울림이 되고 있는 주체사상만을 독백함으로써 북한은 국제사회에서의 외교적 고립과 국내 경제의 어려움을 자초하고 있다.

***北核문제 해결 긍정적 신호들

다행히 부시 행정부가 북한의 무조건적인 선(先)핵포기를 주장하던 기존의 강경한 입장에서 북한이 받아들일 수 있는 체제보장 방식을 단계별로 병행할 수 있다고 최근 시사한 점은 북핵 문제 해결의 긍정적인 신호로 여겨진다.

북한도 핵 개발을 통한 강성대국론과 같은 폭력적 발언보다는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대한 적극적 의지 표명으로 화답해 국제사회로부터 문명국가로 인정받을 수 있는 계기를 만들기 바란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회담이 계속되고 또한 성공적인 결실을 얻기 위해 미국과 북한은 지금까지의 선언적 독백에서 벗어나 지금이라도 문명적 대화의 자세를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문명적 대화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대화가 어렵다 하여 야만적 폭력에 호소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아무리 시간이 오래 걸리고 서로의 뜻이 통하지 않아 답답해도 대화는 계속 진행돼야 한다. 그래야만 파국을 피할 수 있으며, 오늘은 힘들지라도 내일의 기대를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李丞哲 한양대 국제학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