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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 9·11은 끝나지 않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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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이제 우리는 모두 미국인이다."

2년 전 9.11 직후 반미적인 논조로 유명한 프랑스 최고의 신문 르몽드는 이렇게 선언했다. 지구촌 곳곳에 미국에 대한 동정과 지지의 물결이 넘쳤다. 반미적인 이슬람 신정(神政)국가 이란정부가 테러를 규탄하는 관제데모를 조직하고, 부시 대통령의 대북 적대정책에 절치부심하는 북한도 테러를 규탄하는 대열에 가담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는 어느 한 회원국에 대한 공격을 전체 회원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는 헌장 제5조를 발동했다. 알카에다에 은신처를 제공한 탈레반 정권의 생명줄을 끊은 아프가니스탄전쟁은 많은 나라로부터 정의로운 전쟁으로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9.11 두돌을 맞은 오늘, 사정은 거의 1백80도 달라져 있다. 한마디로 9.11의 신통력이 사라진 것이다. 9.11 규모의 테러가 재발할 조짐이 보인다는데도 미국의 동맹.우방들은 미국을 중심으로 테러 방지의 공동전선을 펴기는커녕 미국이 9.11을 악용해 어느 나라의 도전도 허용하지 않는 아메리카 제국(帝國) 건설에만 열중한다고 비판한다.

미국은 이라크전쟁에서 세상 인심을 다 잃었다. 미국은 "정의는 나에게 있다"는 자세로 유엔과 프랑스.독일 같은 주요 동맹국들의 반대에 아랑곳하지 않고 영국.스페인.호주 정도를 들러리로 세우고 이라크를 침공했다. 이름하여 일방주의다. 그것도 철저한 일방주의다.

미국은 유엔안보리 결의를 한번 더 거쳐 전쟁의 정당성을 확보함으로써 국제사회의 광범위한 참전의 길을 열자는 세계 여론을 묵살했다. 미국은 처음에는 이라크 침공을 테러와의 전쟁 속편이라는 논리를 내세웠다. 그러나 알카에다와 사담 후세인이 테러 공범의 관계가 아니라 오히려 서로 경계하고 견제하는 관계라는 것이 확실해졌다.

그래서 미국은 후세인 정권이 이라크 곳곳에 대량 살상무기를 감춰두고 있어 선제공격은 정당하다는 쪽으로 말을 바꿨다. 그러나 전쟁 중에도, 그 후에도 대량 살상무기는 발견되지 않았다.

전쟁은 신보수파의 각본대로 잘 끝났다. 그러나 후세인 없는 이라크 권력의 공백을 메우고, 미국의 침공과 점령을 정당화할 만한 수준의 이라크인의 민주정부를 세우고, 경제를 재건하는 전후(戰後) 처리는 기대에 훨씬 못 미친다. 이라크는 절망적인 혼돈상태다.

15만의 미군과 6만의 영국군이 주둔하고 있지만 바그다드 주재 요르단대사관과 유엔 대표부가 잇따라 테러 공격을 받는 것을 예방하지 못했다. 이라크의 정치적인 안정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 이슬람 시아파 최고지도자 알하킴도 테러에 쓰러졌다.

미군과 영국군은 자신들의 안전을 지키기도 힘겹다. 아프가니스탄전쟁으로 '일자리'를 잃은 직업 테러리스트들이 이라크로 속속 집결해 후세인 잔당들과 전열을 정비하고 있다. 이라크 국민들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 세가지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이 반미분자들을 고무한다. 치안과 물과 전기다.

이라크 전후 처리가 순조로웠다면 프랑스와 독일이 미국의 발목을 못 잡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영어에도 외래어로 침투한 독일말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다.

남의 불행에 마냥 행복한 '쌤통 심리'를 뜻한다. 이런 불행은 신보수파가 스스로 자초했다. 신보수파 지식인 로버트 케이건이 위악적(僞惡的)일 만큼 솔직하게 말한 대로 그들은 국제정치를 힘과 힘이 충돌해 우승열패(優勝劣敗)하는 정글의 세계로 본다. 그들에게 힘은 정의요, 사용하라고 존재한다.

친이스라엘적인 신보수파는 이스라엘 건국을 하느님의 뜻에 따른 유대국가의 재생(再生)으로 보는 기독교 원리주의자들과 제휴해 아랍.중동을 친미와 친이스라엘의 세계로 바꾸는 데 정책의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

그들이 그런 근시안적 비전과 전리품 독점의 과욕을 버리고 돌아앉아서 '쌤통 심리'를 즐기는 동맹.우방을 끌어안는 것이 시급하다. 그것이 아직 끝나지 않은 9.11에 마침표를 찍고 부시가 말하는 문명에 대한 테러의 위협을 물리치는 유일한 길이다.

金永熙 국제문제 大記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