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간 죽겠죠"..구조대 냉대 받고 숨진 프랑스 흑인 여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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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서 죽을 것 같아요” “세상의 모든 사람들처럼 당신도 언젠가는 죽겠죠.”
프랑스에서 한 흑인 여성이 복통으로 구조대에 전화를 걸었다가 조롱과 외면을 받고 뒤늦게 병원에 후송돼 목숨을 잃는 사건이 발생했다. 구조대의 성의 없는 대응과 인종 차별적인 태도에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프랑스 정부는 뒤늦게 구조대에 대한 감사에 나섰다.

프랑스의 앰뷸런스 차랑 [EPA=연합뉴스]

프랑스의 앰뷸런스 차랑 [EPA=연합뉴스]

9일(현지시간) BBC에 따르면 프랑스의 스트라스브루에 살던 스물 두 살의 흑인 여성 나오미 무셍가가 프랑스 응급구조번호인 15번으로 전화를 건 것은 지난 해 12월 29일이었다. 극심한 복통에 시달리던 무셍가는 가느다란 목소리로 프랑스 응급구조서비스(SAMU) 상담요원에게 “죽을 것 같다”고 말했다.

佛구조대, 흑인 여성 도움 전화 외면하고 조롱 #사망자 가족이 녹음 파일 공개, 시민들 분노 #상담요원 정직 처분...정부 뒤늦게 조사 나서

그러자 상담원은 귀찮다는 투로 “세상의 모든 사람처럼 당신도 언젠가는 죽겠죠”라고 말했다. 상담원은 또 무셍가가 자신의 상황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제대로 말하지 않으면 전화를 끊겠다”고 짜증을 냈다. 그리고는 응급 출동하는 당직 의사에게 전화를 걸라며 번호를 알려줬다.

상담원의 냉대를 받고 전화를 끊은 무셍가는 5시간이 지난 뒤 스스로 당직 의사에게 전화했고, 사태가 심각하다고 판단한 의사가 구조대에 다시 연락해 병원으로 옮겨졌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심장 마비로 사망했다. 부검 결과 사인은 다발성 장기 부전에 따른 과다 출혈이었다.

무셍가의 죽음은 다섯 달 가까이 묻혀 있다 최근 가족들이 SAMU와의 통화 녹음 파일을 지역 언론에 공개하면서 대중들에게 알려졌다. 녹음 파일에는 상담원이 동료 스태프와 무셍가에 대해 농담을 하는 내용도 담겨 있었다.

사건을 알게 된 사람들은 SAMU의 불성실한 태도를 거세게 비판하고 있다. 특히 무셍가가 흑인이라는 것을 말투로 알게 된 상담원이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조롱했다는 인종 차별 논란도 일었다.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 SNS에는 #저스티스포나오미(#justicepournaomi) 라는 태그를 달고 이번 사건의 철저한 진상 조사를 요구하는 글이 퍼져나가고 있다.

#justicepournaomi 페이스북 페이지 [사진 페이스북 캡처]

#justicepournaomi 페이스북 페이지 [사진 페이스북 캡처]

녹음 내용이 공개된 다음 날 스트라스부르 당국은 “적절한 대응이 아니었다”고 사과하며 전화를 받은 직원에게 정직 처분을 내렸다고 발표했다. 아녜스 뷔쟁 프랑스 보건부 장관도 8일 트위터에 “깊은 분노를 느낀다”는 글을 올리고, 구조 당국의 조처에 대한 감찰 조사를 명령했다고 밝혔다.

한편에선 상담원들의 근로 상황에 대한 문제 제기도 이어지고 있다. SAMU 상담원 중 한 명은 지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늘 피곤하고 스트레스가 많아 번 아웃 상태다. 이런 상태로는 환자들의 고통에 공감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다른 직원도 “100건의 전화 중 10건에서 20건만이 진짜 응급 전화고 대부분은 취객이나 장난 전화”라며 “우리도 정신이 나갈 지경”이라고 호소했다.
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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