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80일 원칙' 깨버린 금감원…나흘새 시총 8조 날아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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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감독원이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 기준 위반을 공개한 지난 1일 이후 이 회사의 주가는 26% 급락했다. [중앙포토]

금융감독원이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 기준 위반을 공개한 지난 1일 이후 이 회사의 주가는 26% 급락했다. [중앙포토]

지난 4일 삼성바이오로직스 주가는 35만9500원에 장을 마감했다. 지난달 30일 종가가 48만8000원이었으니 금융감독원이 회계 기준 위반을 공개한 지난 1일 이후 나흘 만에 주가가 26% 급락했다. 그 사이 시가총액 기준으로 8조5000억원이 허공에 사라졌다.

금감원의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기준 위반 공개 여파는 바이오 주 주가 하락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유가증권시장 의약품 지수는 지난 4일 1만2162.89를 기록해 지난달(1만4685.97)과 비교해 하락했다. 주가 하락에 대한 피해는 고스란히 주주들이 떠안고 있다. 집단소송을 제기하려는 움직임도 보인다. 그만큼 금감원의 회계 기준 위반 공개 파장은 크고 깊다.

윤호열 삼성바이오로직스 상무(오른쪽)가 2일 오후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금융감독원의 ‘고의적 분식회계’ 통보와 관련해 반박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왼쪽은 김동중 삼성바이오로직스 전무. [연합뉴스]

윤호열 삼성바이오로직스 상무(오른쪽)가 2일 오후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금융감독원의 ‘고의적 분식회계’ 통보와 관련해 반박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왼쪽은 김동중 삼성바이오로직스 전무. [연합뉴스]

사실 금감원이 감리 원칙에만 충실했어도 이 정도까지 피해가 커지진 않았을 것이다. 금감원이 삼성바이오로직스에 대한 감리에 착수한 건 지난해 4월 무렵이다. 이후 감리를 마치고 이를 공개하기까진 1년 이상 걸렸다. 금감원이 자체적으로 마련한 회계 감리기한 80일을 4배 넘게 초과한 것이다.

금감원은 2015년 감리기한을 기존 100일에서 80일로 줄이면서 “회계 감리업무에 대한 시장의 신뢰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홍보했다. 그런데도 삼성바이오로직스 감리에선 이런 기준이 적용되지 않았다.

만약 금감원이 ‘80일 원칙’을 적용해 감리를 마쳤다면 어땠을까. 금감원이 삼성바이오로직스에 대한 감리를 시작한 지난해 4월 초 이 회사의 주가는 18만원 수준이었다. 그해 6월 주가는 23만으로 상승했다. 금감원이 감리기준에 따라 지난해 6월 삼성바이오로직스 결과를 발표했다면 증발한 시총은 3조9000억원에 그쳤을 수도 있다. 지난주 나흘 동안 주가 하락 폭 26%를 적용하면 그렇다. 호미로 막을 수 있는 걸 가래로 막았다는 지적에서 금감원이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다.

금감원이 금융위원회의 최종 결정 이전에 회계처리 기준 위반을 언론에 공개한 것에 대해서도 기존 원칙을 깬 것이란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임시 조치 결과를 외부에 공개하지 않았던 전례와 비교하면 이례적이란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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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원회법 제1조는 금감원 설립 목적을 이렇게 규정하고 있다. “금융산업의 선진화와 금융시장의 안정을 도모하고 건전한 신용 질서와 공정한 금융거래 관행을 확립하며 예금자 및 투자자 등 금융 수요자를 보호함으로써 국민경제의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금감원이 삼성바이오로직스 감리를 진행하며 이런 원칙에 충실했는지 스스로 돌아봐야 할 때다.

강기헌 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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