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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 혼란 부르는 근로기준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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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이에스더 기자 중앙일보 팀장
이에스더 복지팀 기자

이에스더 복지팀 기자

“제가 쉬는 동안 아이들이 사고라도 당하면 누가 책임지나요.”

“4시간 마다 30분씩 쉬었다고 적는 대장 만들라네요. 진짜 쉴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서류 작업만 늘었네요.”

어린이집 보육교사들이 모인 한 온라인 카페에 최근 올라온 보육교사들의 푸념이다. 이들의 걱정은 역설적이게도 이들의 근로 조건 개선을 위해 최근 개정된 근로기준법에서 비롯됐다.

지난 2월 개정된 근로기준법에 따라 오는 7월부터 어린이집 보육교사들은 근무시간 가운데 휴게시간을 의무적으로 가지게 됐다. 4시간마다 30분씩, 8시간 일하면 1시간을 반드시 ‘근무시간 중에’ 쉬어야 한다.

현재는 어린이집 등 사회복지 관련 업종은 특례(예외)업종으로 지정돼 있다. 이들의 근로 조건을 개선하려고 법을 바꿨는데, 현장에선 오히려 근로 조건을 악화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취재일기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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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근로자들은 보통 9시에 출근해서 점심시간(1시간)에 쉬고 오후 6시에 퇴근하는 형태여서 달라질 게 없다.

하지만 돌봄 근로자인 보육교사는 다르다. 이들은 점심시간에도 교실에서 아이들과 함께 식사하며, 식사 지도를 한다. 교사 1명이 3명(0세)~20명(5세)을 종일 돌보고 있어 근무 시간 도중 쉴 시간을 내기 어렵다.

현장의 혼란에도 고용노동부는 “휴게시간은 근로자의 권리이므로, 현장에서 탄력적으로 나눠 쉬면 될 일”이란 원론적인 입장만 고수하고 있다.

고용주인 원장들도 걱정이 많다. 경남 창원시에서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전모(45) 원장은 “보육시간 단축이나 보조교사 확대 등 근로조건 개선에 필요한 지원은 하나도 없이, 휴게시간만 만들어내라고 하니 답답하다”라고 털어놨다. 휴게시간을 주지 않았다가 적발되면 2년 이하의 징역형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자칫 범법자가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퍼졌다. 김명자 보육교사연합회장은 “일부 어린이집에선 이미 쉬지 않고 쉬었다고 꾸며낸 근무일지를 만들라는 지시가 내려지고 있어 서류 작업, 근무 시간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며 “좋은 취지에서 만든 법이지만 보육교사들에겐 아무런 도움도 안 된다”고 지적했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현장의 상황을 담지 못한다면 관료주의적인 발상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정부가 진정 근로자들의 권리에 관심 있다면, 지금이라도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꼭 필요한 지원과 대책을 마련해야 할 때다.

이에스더 복지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