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총영사 노린 댓글 세력…거래 실체 대충 덮을 수 없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문재인 대통령 지지 활동을 벌여 온 더불어민주당 당원들의 ‘댓글 조작’ 사건 관련 의혹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김경수 의원이 관여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본인이 직접 해명했지만 오히려 의구심을 키웠다. 민주당 측은 어제 댓글 조작 사건을 주도한 김모(48)씨가 김 의원에게 일본 오사카 총영사로 임명시켜 달라고 요구했다고 밝혔다. 도대체 문재인 정부를 위해 어떤 일을 했기에 고위 외교관까지 욕심낼 수 있었는지 의문이다. 또한 이 사건을 담당한 경찰관들이 김 의원과 김씨 등이 나눈 메신저 대화 기록을 확보하고서도 조사를 시도하지도 않은 채 수사를 끝내고 사건을 검찰로 넘겼음이 드러나기도 했다. 사건의 실체는 물론 경찰의 축소·은폐 의혹도 규명이 필요한 상황이다.

댓글 조작 주동자가 오사카 총영사 임명 요구 #어떤 일까지 했기에 외교관 욕심냈는지 의문 #경찰이 서둘러 종결한 사건, 검찰 재수사해야

김 의원은 이틀 전 기자회견에서 “수백 건의 문자를 주고받았다는 보도는 악의적 명예훼손”이라고 주장했다. “문제가 된 인물들이 대선 경선 전에 문재인 후보를 돕겠다고 연락해 왔고, 당시 수많은 지지그룹이 그런 식으로 돕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피의자들과 어떤 일을 놓고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았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김 의원은 “(그들이) 인사와 관련한 무리한 요구를 해 왔고, 받아들여지지 않자 상당한 불만을 품었다”고 설명하면서도 오사카 총영사 임명 요구는 말하지 않았다. 이런 요구를 했다는 것은 그만큼 무리한 일을 했다는 것의 방증일 수 있다. 김 의원은 문재인 정부의 실세 정치인 중 한 명이다. 그가 진심으로 사건 연루자로 의심받는 게 억울하다면 소상하게 경위를 밝혀야 한다.

구속된 피의자 세 명은 특수 프로그램을 사용해 평창 겨울올림픽과 관련한 정부 비판 기사에 달린 댓글의 ‘좋아요’ 수를 조작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그런데 이들은 지난 대선 때는 온라인상에서 문 대통령 지지 활동을 벌였다. 주범 격인 김씨는 ‘드루킹’이라는 필명으로 10여 년 동안 친 노무현, 친 문재인 성향의 글을 써 왔다. 그는 느릅나무라는 출판사를 운영했는데 책을 낸 적은 없다. 이곳은 댓글 조작 활동의 아지트라는 의심을 받고 있다.

김씨 등이 어디에서 활동비를 조달했는지, 지난 대선 때 댓글 조작에 관여했는지, 김 의원 말고도 접촉한 여권 관계자가 더 있는지 등 베일에 가려져 있는 것이 한둘이 아니다. 그런데도 서울경찰청은 메신저상의 대화자로 드러난 김 의원에게는 진술조차 받지 않고 수사를 종결했다. 청와대 또는 정권 고위층의 압력 또는 지시가 있었을 수도 있다. 현재 이 사건은 서울중앙지검이 맡고 있다. 검찰이 서둘러 기소하고 대충 덮으려 한다면, 그래서 사건의 실체가 미궁에 빠진다면 특별검사에 의한 수사가 불가피하다. 검찰은 사건의 원점에서부터 다시 수사해야 한다.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수사 때 드러낸 것만큼의 의지를 보여야 국민이 결과를 믿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