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평 비극 막으려면 자살로 내몰리지 않는 사회로 가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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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진 지 2개월 여 만에 발견된 충북 증평 모녀의 집 앞에 폴리스라인이 붙어있다. 최종권 기자

숨진 지 2개월 여 만에 발견된 충북 증평 모녀의 집 앞에 폴리스라인이 붙어있다. 최종권 기자

"또다른 비극을 막기 위해서라도 자살로 내몰리지 않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한국자살예방협회가 10일 성명서를 내고 자살 유가족을 위한 적극적인 자살 예방 대책을 요구했다. 지난 6일 충북 증평군에서 세 살배기 딸과 함께 숨진 채 발견된 정모(41ㆍ여)씨가 남편을 잃은 자살 유가족이라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정씨는 지난해 남편이 숨진 뒤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어떠한 도움도 받지 못했고 결국 극단적 선택을 했다.

자살예방협회, 성명서로 유가족 대책 요구 #"자살예방법 개정 등 사회 인식 변화 절실" #"종합지원센터 만들고 서비스 연계 의무화 #유가족, 지원 대상이자 문제 해결 주체로"

협회는 증평 사건을 계기로 한국 사회가 변해야 한다면서 "왜 이 안타까운 사건을 막을 수 없었는지 근본적인 인식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했다. 더는 자살을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현행 자살예방법의 개정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협회는 "어떤 이유든 자살 위기에 몰린 국민은 국가와 사회 공동체에 구조를 요청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개념 변화가 없는 자살 예방 대책은 위기에 처한 국민을 구조할 수 없을 것이다"고 지적했다.

자살 유가족은 해마다 8만명 이상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의 자살 위험은 일반인의 8배가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협회는 자살 유가족을 "사회적 재난에 처해진 심리적 난민"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어려움에 처한 자살 유가족이 도움을 요청할 수 있도록 포괄적 지원ㆍ조기 개입을 위한 촘촘한 안전망을 갖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협회는 "다양한 문제 해결 방법과 연결해줘 유가족들을 도울 수 있는 자살 유가족 종합지원센터가 필요하다. 유가족을 제일 처음 접촉하는 경찰과 사망진단서를 등록할 때 방문하는 동사무소 직원이 유가족에게 서비스를 연결하는 것도 법적으로 의무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유가족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협회는 "자살 유가족을 단지 지원의 대상일 뿐 아니라 자살 문제 해결의 주체로 인정해야 한다. 자살 예방 중요성을 알릴 수 있는 강사이자 자살예방활동가로 역할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픈 경험이 있는 유가족이 고통받는 유가족을 가장 잘 도울 수 있는 만큼 이를 최대한 활용하자는 취지다.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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