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교육 받고 16년도 일 못 해" 소득 높이기보다 고용 안정성이 더 중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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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중산층인가(홍두승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중산층은 중간계급에 속하고, 소득과 자산이 중간이며 대학(2년제 포함) 교육을 받은 계층으로 정의할 수 있다. 여기서 소득의 중간은 도시가구 월평균 소득의 90% 이상, 자산의 중간은 20평 이상 주택을 소유하거나 30평 이상 전.월세를 든 경우로 정할 수 있다. 네 개 기준 가운데 세 개 이상에 해당하면 '핵심적 중산층', 두 개를 충족하면 '주변적 중산층', 한 개 이하는 '비중산층'으로 분류한다. 이 기준에 따라 조사(2002년 서울)한 바에 따르면 중산층은 75.9%지만 '주변적 중산층'이 27.1%나 된다. 안정적인 중산층이라 할 수 있는 '핵심적 중산층'은 48.8%로 절반에 못 미친다. 중산층 육성이라는 정책 기조는 양극화 해소에 비해 많은 장점이 있다.

첫째, 중산층 육성이 더 적극적 개념이다. 양극화 해소는 추가 하락을 막는 것을 의미할 뿐 현재의 사회적 하층이 과연 장래에 어떤 생활양식을 구가할 수 있도록 정책을 펴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지표가 없다. 반면 중산층 육성은 중산층에 해당하는 지표를 제시해 보다 적극적인 정책 수립이 가능하다.

둘째, 중산층 육성이 더 역동적인 개념이다. 경쟁 과정을 극복하면서 중산층이 되고자 하는 역동적 개념이 사회 발전을 촉진할 것이다.

셋째, 양극화 해소는 사회 구성원의 갈등과 대결을 전제로 하지만 중산층 육성은 협력과 사회통합을 지향하는 개념이다.

마지막으로 중산층 육성이란 비중산층을 포함한 전 국민이 중산층이 되기 위한 정책을 의미하는 것이지, 중산층만을 대상으로 한 정책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이번 중산층 논의가 사회통합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 중산층 되살리려면(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중산층도 고용 불안정과 소득 불안정을 피할 수 없게 됐다는 점에서 중산층 위기가 대두되고 있다. 여기에다 최근 부동산 급등으로 부동산을 소유한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 간에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지만 주택 소유자는 전국적으로 54.2%에 불과하고, 서울은 41.6%다.

조기퇴직이 정착되면서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졌다. 평균 근속연수는 한국이 5.6년으로 일본(12.2년), 영국(8.1년), 미국(6.6년)보다 낮다. 관리직과 사무직 일자리가 줄고 비정규직이 늘었다. 중산층이 경험하는 불안은 현재보다 미래에 대한 불안이다. 시장논리를 과도하게 내세우다 보니 중산층의 고용 불안이 생긴 것이다. 중산층의 고용 안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중산층 살리기는 불가능하다. 엄청난 사교육비를 들여 16년 이상의 교육을 받지만 정작 소득을 올릴 수 있는 시간은 16년이 안 되는 상황이다. 소득을 높이는 것보다 고용 안정성을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

따라서 중산층 살리기의 핵심은 화이트칼라 전문직.관리직.사무직 종사자들의 고용 불안을 덜어주는 것이다. 조기퇴직 문제는 정부 정책의 문제라기보다 기업의 고용 정책 문제다. 고용 안정성은 기업에 의해 이뤄질 수 있고, 경제적 안정성은 노령연금이나 공공복지를 통해 국가에 의해 이뤄질 수 있다. 조세제도를 통한 재분배 효과를 강화해야 하고, 불로소득으로 부유층이 부를 독점하는 것을 제도적으로 막아야 한다.

또한 중산층 살리기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가난으로 고통받고 있는 노인과 여성가구 문제가 대표적이다. 노인의 3분의 1이 빈곤층으로 전락했다. 이혼의 급증과 단독가구의 증가로 여성가구 서넛 중 하나는 빈곤가구다. 조기퇴직, 비정규직 저임금, 노인과 여성 빈곤층, 교육제도, 의료 불평등 문제 등과 관련된 종합적 대책이 필요하다.

◆ 미국의 중산층 위기 극복(이현송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1950~60년대 높은 경제성장에 힘입어 70년대 초 중산층이 전체 인구의 절반을 넘었다. 그러나 80년대 이후 미국 경제가 구조조정을 겪고, 임시직이 늘면서 중산층이 축소됐다. 90년 중산층은 45%로 줄었다. 당시 남성 소득이 줄고 직장에서 쫓겨날 위험이 커지자 여성들이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다. 이후 미국에서 기혼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는 계속 확대됐다. 최근 미국에서 중산층 위기는 과거처럼 심각하지 않다. 맞벌이 증가로 중산층의 가구소득이 높아졌기 때문일까. 2000년 맞벌이 가구는 44%였다.

◆ 일본의 양극화 논의(이종구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90년대 들어 거품경기가 꺼지고 장기 불황이 이어지자 양극화 논의가 고조됐다. 거품경기는 소득 격차보다 자산 격차를 더 벌렸다. 기업의 해외 이전으로 취직 기회도 줄었다. 부모세대는 정규직으로 보호받지만 청년층은 비정규직이거나 일자리가 없는 '세대간 일자리 격차'를 낳고 있다. 노동시장, 교육, 복지의 종합적 개혁이 필요하다는 점은 모두들 인정하지만 구체적인 해법은 분명치 않다. 시장원리의 강화로 갈지, 아니면 새로운 공정성의 개념을 모색할지를 놓고 논쟁 중이다.

◆ 유럽의 복지정책(안상훈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대륙유럽형은 독일.프랑스.오스트리아 등이 속한다. 사회보험을 중심으로 작동한다. 보험료를 성실하게 납부한 사람들이 혜택을 받는다. 중산층이 주요 복지수혜집단이다. 앵글로색슨형은 영국이 대표적이다. 공공부조가 가장 중요한 복지 프로그램이다. 노후 소득보장이나 의료보장 등은 민간이 맡는다. 북유럽형은 스웨덴.덴마크.노르웨이.핀란드가 속한다. 전 국민이 복지정책의 대상이다. 사회보험 외에도 고용.교육.주거 등 사회서비스를 확대했다. 북유럽형처럼 중산층에 혜택이 많이 돌아가는 체제에서는 국민 부담이 크더라도 조세저항이 낮다. 사회서비스를 강화한 북유럽형에서 중산층이 가장 두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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