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이주노동자 앞에서 야동시청까지, 인권위 제도개선 권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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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남자들이 애인하자, 사귀자고 하고 심한 경우에는 몸을 만진다. 외국 사람은 함부로 해도 되는 줄 알아요."
"휴게 시간에 내 앞에서 야동을 보고 음탕한 눈길로 쳐다봐 기분이 나쁜 적도 있다."

26일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이성호)가 국내 거주중인 여성 이주노동자들의 조직내 성희롱ㆍ성폭력 노출이 심각하다고 판단, 정부에 제도개선을 주문했다. 해당 사례는 제도 개선을 주문하면서 만든 자료집에 나오는 내용이다.

'여성이주노동자 인권증진을 위한 제도개선 권고' 자료 중.

'여성이주노동자 인권증진을 위한 제도개선 권고' 자료 중.

인권위는 지난 22일 상임위원회를 열고 여성 이주노동자들의 인권보호ㆍ증진을 위해 고용노동부와 여성가족부 장관에게 성희롱ㆍ성폭력 예방과 구제, 성차별 금지와 모성보호를 위한 제도개선 권고를 의결했다.

지난 2016년 인권위가 제조업분야 여성 이주노동자 385명을 대상으로 한 실태 조사에 따르면 여성 이주노동자들은 잠금잠치가 제대로 마련되지 않거나 성별분리가 안 된 숙소에서 지내는 등 성희롱ㆍ성폭력이 발생하기 쉬운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캄보디아 출신 여성 이주노동자는 인권위 조사에서 "남성 동료와 같은 방을 쓰라는 지침이 내려져 고용주에게 항의하자 '같은 나라 사람인데 뭐가 문제냐'는 답이 돌아왔다"고 말했다.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33.3%는 '남ㆍ여화장실이 구분돼 있지 않다'고 답했고, 24.3%는 '남ㆍ여 숙소가 분리돼 있지 않다'고 했다. '숙소에 다른 사람들이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다'는 답은 20.7%, '화장실, 욕실 등에 안전한 잠금장치가 없다'고 한 이들도 9.9%에 달했다.

국가인권위원회

국가인권위원회

성희롱·성폭력 피해도 발생했다. 조사대상 중 11.7%는 성희롱ㆍ성폭력 피해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피해경험도 1회에 그치지 않고 2회 이상 반복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답했다. 성희롱ㆍ성폭력 피해에 대해 40%는 불이익을 우려해 '말로 대응하거나 그냥 참았다'고 밝혔다.

이외에도 인권위는 여성 이주노동자들도 근로기준법과 남녀고용평등법에 따라 출산 휴가나 육아휴직 제도를 법적으로 사용할 수 있으나, 실제 현장에서는 거의 적용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인권위는 고용노동부에 △이주노동자들이 남녀 분리 공간에서 거주하도록 지도ㆍ감독 △성희롱ㆍ성폭력 예방 교육 실태를 점검 및 다국어 교육자료 개발 △성희롱ㆍ성폭력 피해 이주여성 지원제도 강화 등을 권고했다. 여성가족부에는 △이주여성 폭력피해 전담 상담 기능 설치 △관련 상담과 지원 서비스의 연계 방안을 마련을 권고했다.

여성국 기자 yu.sungk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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