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단계 성숙하는 계기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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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학생들의 남-북한 학생회담 주장에 대한 정계와 정부의 입장이 대충 정리되고 논점도 분명해진 것으로 보인다.
그 동안 다소 어정쩡한 입장을 보이던 야권은 3당 총재회담을 통해 6·10학생회담의 연기를 요망하고 통일논의의 정치권 수렴을 위해 국회에 통일정책상위를 설치한다는데 합의했다.
노태우 대통령도 이 문제에 관해 학생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남-북 학생교류를 적극 추진할 뜻을 밝혔다.
야권은 학생회담연기를 요망하는 이유로「아직 국민적 합의가 충분히 성숙되지 않았다 는 점을 내세웠고, 정부측은 교류는 추진하되 그 실현을 위한 교섭과 추진은 정부가 맡아야 한다는 일관된 논리를 제시하고 있다.
정부측은 아울러 야권과 학생들의 요구에 응해 통일원장관이 학생대표들을 면담하고 정부측 입장을 설명하는 노력도 보였다.
문제는 이제 학생들이 이 같은 정계와 정부의 의견과 방침을 받아들이느냐, 아니면 판문점 행의 강행을 시도함으로써 또 한번 공권력과의 격돌이란, 국민 누구도 원치 않는 불상사를 일으키느냐는 것이다.
이번 문제에 대한 정치권의 대응으로 보아 이제 과거와는 달리 국회에서 활발한 통일논의가 열릴 것이 확실해 졌고 정부 역시 그전과는 다른 적극 자세로 학생교류를 포함한 보다 과감한 남-북간의 인적교류를 추진할 것이 확실해졌다.
따라서 학생들로서는 학생회담의 실현이라는 목표달성은 아니지만 학생교류의 추진과 통일논의의 개방이란 두 가지 중요한 요구가 정책으로 채택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스스로의 의지만으로 학생회담의 실현을 일방적으로 추진하기보다는 국회의 통일논의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자기들의 주장을 여론화함으로써 통일논의의 결과로 나올 통일정책에 주장을 반영하는 노력이 온당하고 현실적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이런 노력 없이 정치권의 반대는 물론 대중적 여론의 지지도 못 받는 상태로 통일문제에 접근할 경우 그 주장이 아무리 순수하고 전향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성사는커녕 주장의 값어치마저 훼손할 가능성이 있다. 학생들은 이런 점도 생각해 회담 강행시도로 인한 불상사를 막는 게 옳을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시간도 없다. 현명한 판단을 함으로써 학생들이 운동뿐 아니라 스스로의 행동에 대한 무거운 책임감도 갖고 있음을 국민들에게 보여주는 게 좋겠다.
이번에 보인 야권 3당의 행동통일은 일단 평가할 만 하다. 통일, 안보, 외교문제에 초당적 대응을 한다는 원칙론은 야권에서 흔히 나왔지만 실제 초당적으로 목소리를 합치는 노력은 보기 어려웠던 게 사실인데 이번에 하나의 좋은 예를 만들었다고 본다. 그리고 통일논의의 활성화와 정치권 수렴을 위해 국회에 관련상위를 두기로 한 것도 바람직한 일이다.
다만 이런 일을 맞아 야당들이 아직도 뚜렷한 주 견을 세우지 못하거나 눈치를 보는 자세가 남아 있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통일문제에 관한 입장이야말로 당의 성격과 직결 된 것이다. 진보 파의 반대는 두렵고, 보수파의 지지도 잃고 싶지 않다는 어정쩡한 자세로는 안 된다. 당의 성격을 분명히 해야 국민지지도 얻을 수 있고 학생들에 대해서도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정부도 대통령이 천명한 대로 학생들이 납득할 만한 적극적인 자세로 국민의 통일 의지를 수용하고 남북교류의 실현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이번 학생회담 문제가 아무쪼록 정부·정계·학생 할 것 없이 통일문제에 접근하는 역량의 한 단계 성숙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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