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낭만주먹 낭만인생 12. 패배한 싸움(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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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서울 동숭동에서 통일문제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는 백기완씨. 필자의 평생 친구다.

삼 세 번이라더니, 진 싸움 중 앞서 두 차례 언급했던 장충동 독종과의 기 싸움, 이근안의 고문은 단발로 끝난 사건이다. 반면 1954년 백기완에게 맞았던 빰따귀, 즉 세 번째 패배야말로 이후 내 삶을 온통 바꿔놓았다. 그 점에서 그것은 운명적이었다.

"우리가 처음 만난 것은 54년 겨울. 몹시 추웠던 기억이 납니다. 서울 후암동이었지요. 생각 나슈? 그때 백형의 첫 인상은 바싹 말랐고, 눈알만 번갯불같이 번득이며 사납게 버티고 있던 꼴이라니…"

백기완이 발행하는 잡지 '노나메기' 제7호(2002년)에 나는 그렇게 썼다. 당시 상황을 전하는 여러 개 '구라의 이본(異本)'과 달리 오늘 내 얘기가 정본이다. 당시 내 나이 열아홉, 백기완은 스물. 그 시절 백기완은 청년운동가이자, 영어 천재로 유명했다. 초등학교 졸업 학력인데도 영어학원 강사로 활약했고, 길 가며 영어 단어 외우느라고 전봇대에 부딪혀 코피를 줄줄 흘린다는 소문이 났을 정도였다.

우리의 대면도 그런 소문에 끌려서였다. 그러나 그날 후암동에 가기 전 나는 이미 주눅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첫 대면에 백기완이 시큰둥한 표정으로 물었다.

"뭐, 네 별명이 배추라고? 힘깨나 쓴다고 들었어. 그래, 한 번에 몇 명이나 때려 눕히는데?"

"한 열 명쯤…"

말이 채 끝나지도 전에 그가 벌떡 일어서더니 내 뺨을 후려갈겼다. 이어지는 백기완의 고함소리는 마치 천둥벼락과도 같았다.

"잔망스런 놈아! 사나이가 주먹을 쥐면 천하를 울리고 뒤흔들어야지, 겨우 사람이나 때려? 너는 힘 자랑을 그렇게 하냐? 꺼져 임마!"

상황 끝이다. 대들고 말 것도 없이 그냥 완패였다. 싸우지 않고 이길 수 있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어물어물 물러난 뒤에도 계속 그 말이 귓전을 맴돌았다. 그간의 철부지 생활을 반성도 해봤고, 며칠간 잠을 못 이루며 끙끙 앓았을 정도였다.

며칠 뒤 그를 찾아 "친구로 받아달라!"고 애원했다. 깨끗이 무릎 꿇은 것이다. 그때는 몰랐다. 그렇게 만들어진 우정이 반세기를 넘길 줄이야. 지난해 평론가 구중서, 시인 강민, 화가 주재환과 함께 백기완 사무실을 찾았다. 모임의 막내인 주재환이 기분이 좋은지 연방 떠들었다. 그때 내가 점잖게 한마디를 타일렀다.

"주 화백, 큰 산이 앞에 있으면 '아하, 저게 큰 산이구나'하며 감탄만 하라고! 우린 그저 입을 다물자고. 알았어?"

그렇다. 과연 백기완은 큰 산이다. 생각해 보라.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사람이 한 사람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게 나에게는 백기완이다. 이 못난 배추에게 민족과 나라를 일깨워준 이도 그다. 많은 이들이 백기완 곁을 떠났지만 나는 그럴 수가 없다.

그에게 정치적 동지야 적지 않겠지만, 진정한 인생 친구는 나 배추, 그리고 '대륙의 술꾼'인 고(故) 김태선 정도가 아닐까 싶다. 내일 밝힐 김태선의 일화가 그걸 말해준다. 가슴 따뜻한 남자 백기완의 사람됨도 드러난다.

배추 방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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