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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정상회담 D-48, 뭘 어떻게 준비하나

중앙일보

입력

남북이 합의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의 정상회담은 50일도 남지 않았다. 남북은 4월 말 회담을 열기로 한 상태다. 장소는 판문점 남측 지역인 평화의 집이다. 회담일을 4월 30일로 예상하더라도 13일 현재 기준으로 D-48일이다. 정상회담 준비에 넉넉한 시간은 아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번 주 중에 남북 정상회담 준비위원회를 구성해 주말쯤부터 회의하며 본격 가동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준비위원장은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맡기로 했다. 청와대와 국가정보원, 통일부·외교부·국방부 등 외교·안보 부처를 포함해 기획재정부, 문화체육관광부 등을 망라하는 범정부 차원의 준비위가 꾸려질 전망이다.

 평화의 집 전경. [사진공동취재단]

평화의 집 전경. [사진공동취재단]

정부가 지난 5일 남북 정상회담에 합의하고도 준비위를 가동하지 못한 건 주변국에 파견하고 있는 특사단의 일정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이전 두 차례의 정상회담은 미국, 중국, 일본 등 주변 국가들과 사전 조율이 끝난 상태에서 진행됐다"며 "이번에는 남북이 합의하고 주변국을 설득하다 보니 주변 정리에 시간이 걸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특히 임 실장이 준비위원장을 맡기는 했지만,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이 핵심 멤버"라며 "이들이 지난주 미국에 이어 이번 주 초반에 각각 중국ㆍ러시아와 일본을 특사로 간 상황에서 속도를 내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덧붙였다. 12일 정 실장은 중국에, 서 원장은 일본에 찾아 가 남북, 북미 정상회담 등의 진행 상황을 전하고 있다.

평화의 집 인포그래픽. [중앙포토]

평화의 집 인포그래픽. [중앙포토]

이 관계자는 준비 시간 부족을 우려하는 목소리에 대해 "이미 두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을 했던 경험을 통해 어려움 없이 준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 회담은 실무적으로 진행할 계획인 데다 회담 의제 역시 특사 교환을 통해 어느 정도 큰 가닥은 잡혀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 당국자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회담 준비에는 시간이 촉박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장 회담 장소부터 문제다. 이전 두 차례의 회담은 북한의 영빈관인 백화원에서 열렸다. 백화원은 숙소와 회담장을 갖추고 있어 대규모 수행원을 동행할 수 있다.

하지만, 평화의 집은 회담장과 회의실, 기자실이 전부다. 정부 당국자는 "평화의 집도 회담을 위해 건축된 시설이긴 하지만 정상회담을 치르기엔 규모나 시설 면에서 부족한 측면이 있다"며 "특히 완공된 지 30년 가까이 돼 손볼 곳도 있다"고 말했다. 1989년 완공된 평화의 집은 지상 3층 규모다. 1층엔 기자실과 소회의실, 2층엔 회담장과 남북회담 대표 대기실, 3층엔 대회의실과 소회의실을 갖추고 있다.

평화의 집 회담장 내부. [사진 통일부]

평화의 집 회담장 내부. [사진 통일부]

이곳에서 회담을 한 경험이 있는 한 고위 관계자는 "장시간 회담을 하다 보면 정신을 가다듬기 위해 샤워를 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러나 부하 직원들이 드나드는 화장실에서 그럴 수 없어서 힘든 점이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또 "제대로 된 식당이 없어 식사하는데도 어려움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번에 회담이 열릴 경우 식사나 다과는 서울 시내 호텔 등이 맡게 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회담 장소를 평화의 집으로 한 것은 형식보다는 내용에 치중하겠다는 의미가 있다는 입장이면서도 정상회담의 격에 맞게 회담장 곳곳을 수리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정상회담 이전에 문 대통령과 김정은 책상 위에 각각 놓이게 될 핫라인을 설치해야 하는 과제도 남아 있다. 한 당국자는 "남북이 기존에 30여 개의 라인을 가설해 놓고 사용하지 않는 것이 있다"며 "그러나 노후한 선로가 있고, 도청 방지 등의 기술적인 점검을 해야 한다. 개통 시기나 운영 방법 등 남북이 아직 협의해야 할 사안이 남아있다"고 말했다.

정부의 정상회담 준비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여론과 의제다. 남북정상회담 발표 이후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70%대를 회복(9일, 한국갤럽)하는 등 긍정적인 여론이 조성됐다. 그러나 정부 관계자들은 평창 겨울올림픽 준비 때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구성에 대한 20ㆍ30세대의 반발을 기억하고 있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의제를 이끌었을 때의 위험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얘기다.

특히 남북 정상회담이 북미 정상회담에 앞서 이뤄진다는 점에서 국제사회와의 협력도 치밀하게 준비해야 한다. 북한 비핵화를 위한 김정은의 의지를 끌어내면서도 대북 제재 문제 등을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전현준 우석대 초빙교수는 "50일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가 북한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와 보조를 맞추는 게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며 "이번 회담은 한반도의 운명을 가를 수 있는 기로인 만큼 회담 준비과정에서 지난 9년의 공백을 극복하는 게 급선무"라고 말했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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