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벽 등반 월드챔프 “올림픽 종목 빨리 됐으면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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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아이스킹 박희용. [사진 주민욱 작가]

아이스킹 박희용. [사진 주민욱 작가]

박희용(36)은 ‘아이스 킹(Ice King)’으로 불린다. 2006년 이후 줄곧 아이스클라이밍(빙벽 등반) 국가대표로 활동 중인 한국 클라이밍의 대들보다. 지난 시즌엔 월드챔피언 자리에 올랐다.

아이스클라이밍 국가대표 박희용 #재능있는 중고생 10여 명 무료 지도 #“평창 쇼케이스 무산돼 안타까워”

아이스 킹은 해외에서도 맏형 격이다. 한국은 2011년 청송월드컵을 개최한 이래 세계 아이스클라이밍을 주도해왔으며, 박희용은 대열의 맨 앞에 섰다. 그래서 국제산악연맹(UIAA)은 평창 겨울올림픽 기간 중 예정된 쇼케이스(시범 프로그램)에 지난해 12월 박희용을 홍보대사로 임명하기도 했다.

쇼케이스는 컬처 프로그램이긴 하지만, 단지 쇼는 아니다. 정식종목 채택에 앞서 IOC 위원를 비롯한 전세계 스포츠 팬에게 그 종목의 매력과 흥행 가능성을 뽐내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아이스클라이밍은 러시아 소치 겨울올림픽에 이어 평창에서 두 번째로 쇼케이스에서 선보이기로 돼 있었다.

하지만 쇼케이스는 결국 열리지 않았다. 주관 경기단체인 대한산악연맹(이하 산악연맹)의 미숙한 일 처리 등이 문제였다. 이젠 어쩔 수 없이 돌아가야 할 판이다. 박희용은 지난달 21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2022년 베이징 겨울올림픽 정식종목으로 가는 길에 발판이 될 수 있었는데, 아쉽다”고 말했다.

결국 아이스클라이밍이 베이징 올림픽에서 정식종목이 될 가능성이 줄어들었다. 설사 된다 해도 그때가 되면 박희용의 나이가 마흔이다. 박희용은 “앞으론 내 성적보다는 후배들에게 힘이 되고 싶다. 훌륭한 후배를 키우는 게 지난 십여 년 동안 클라이밍에 투자한 것에 대한 보상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래서 이번 시즌 클라이밍에 재능 있는 중고생들 10여 명을 대상으로 무료로 개인 훈련을 지도했다.

박희용이 밝힌 쇼케이스가 무산된 과정은 이렇다. “처음엔 ‘돈이 없다’는 게 이유였다. 대한산악연맹은 다른 경기단체처럼 대기업 오너가 아닌 산악인이 줄곧 회장을 맡아와 재정이 열악한 게 사실이다. 선수들도 이 점을 알고 ‘우리도 십시일반으로 보태자’고 했다. 일부 선수는 ‘국제대회서 딴 상금을 내놓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돈보다 산악연맹의 행정력 부재가 더 컸다. 최근 6개월 동안 ‘쇼케이스를 한다, 안 한다’ 말을 너무 많이 바꿔 신뢰를 잃었다. 심지어 개막식 3주를 앞두고는 올림픽 장소가 아닌 평창송어축제장에서 쇼케이스를 한다고 해 국제적 망신을 샀다.”

그 과정에서 아이스 킹의 명성에도 금이 갔다. 그는 “아이스클라이밍은 겨울에만 가능하다. 그래서 전세계 선수들 모두 이번 올림픽 장소서 열리는 쇼케이스를 기대하고 있었다”며 “항공권을 끊어야 하는데, 산악연맹에서는 자꾸 오락가락 하니 나에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냐’며 아쉬움을 표하는 친구들이 많았다”고 했다. 한국이 들어야 할 원망을 그가 대신 들은 셈이다.

아이스 킹은 2000~2006년 스포츠클라이밍 국가대표 선수였다. 현재 경기도 성남에서 실내 암벽장을 운영하며 후배 양성에도 힘쏟고 있다. 박희용은 2020년 도쿄 여름올림픽에 정식종목으로 첫 선을 보이는 스포츠클라이밍에 대해서도 걱정어린 조언을 했다. 그는 “일반인들은 우리를 스포츠클라이밍 최강국으로 알고 있지만 세계 클라이밍의 추세는 변하고 있다”며 “우리는 리드(난이도) 종목엔 뛰어나지만 이번 올림픽은 스피드·볼더링(줄 없이 낮은 벽을 오르는 등반)을 합산해 점수를 매긴다. 자칫 하다간 올림픽 출전도 어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영주 기자 humane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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