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기형도 동성애자 아니다, 소설 취재하고 있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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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장편소설 『기형도를 잃고 나는 쓰네』를 출간한 소설가 김태연씨. 기형도와 가장 가까운 친구였다.

장편소설 『기형도를 잃고 나는 쓰네』를 출간한 소설가 김태연씨. 기형도와 가장 가까운 친구였다.

생전 기형도(1960~89) 시인이 고혈압을 앓고 있었고, 그래서 그 병마가 결국 갑작스러운 죽음을 불렀고, 동성애자였다는 일부의 주장과 달리 소설 집필을 위한 취재 차원에서 동성애에 관심을 가진 거였다는 주장이 나왔다. 시인의 연세대 79학번 동기로 연세문학회 활동을 함께 한 소설가 김태연(58)씨가 그런 증언을 했다. 시인의 29주기 (3월 7일)에 맞춰 출간한 장편소설 『기형도를 잃고 나는 쓰네』(휴먼앤북스)에서다.

시인의 대학 친구 김태연 소설가 #장편 『기형도를 잃고 …』 출간 #옆에서 지켜본 시인의 체취 담아

놓칠 수 없는 거지만, 소설책의 제목 ‘기형도를 잃고…’는 시인의 아름다운 시편 가운데 특히 사랑받는 ‘빈집’의 첫 구절을 흉내 낸 것이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로 시작해서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로 끝나는 시 말이다. 청춘의 상징처럼 돼버린 시인이 생전 무언가의 상실을 아파했던 것처럼, 그런 친구의 죽음이 작가 김씨에게는 비슷한, 친구가 죽은 지 29년이 됐는데도 잊히지 않는 화인 같은 아픔이어서, 어쩌면 통증이 더 심한 상처가 됐다는 얘기다.

26일 기자간담회 자리. 김씨는 시인과의 최초의 조우의 순간부터 소개했다.

“대학 첫 강의에 실망해 술을 진탕 마신 뒤 캠퍼스에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었는데 누군가 나를 둘러업고 어딘가로 데리고 갔다. 깨어보니 연세문학회 써클룸이었고, 나를 업고 간 건 기형도였다. 기형도는 내게 문학회에 가입하라고 권했다.”

김씨는 기형도와 자신은 공통점도 있었지만 상극일 정도로 다른 점도 있었다고 밝혔다. 기형도가 1984년 중앙일보에 입사하자 교수들이 신문사 기자 하지 말고 학문의 길을 걸으라며 말렸을 정도로 학업성적이 뛰어난 모범생이었던 반면 자신은 학점이 형편없는 좌충우돌 돈키호테형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둘은 이상하리만치 잘 어울렸다. 김씨가 ‘수학 천재’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심취해 있었다면, 기형도는 사정을 아는 사람은 깜짝 놀랄 만큼 당대의 철학 사상에 빠져 있었다. 두 사람은 수학과 철학에 관한 휘황찬란 담론을 나눴다. 지적 허세도 부리기 마련인 대학 신입생 무렵의 풍경이다.

김태연씨의 소설 표지와 기형도의 대학시절 노트.

김태연씨의 소설 표지와 기형도의 대학시절 노트.

김씨는 “기형도가 그토록 철학에 미쳐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극소수다. 기형도의 작품 가운데 어려운 것들이 있는데, 이런 배경에서 읽으면 덜 어렵다”고 했다. 가령 ‘소리 1’ 같은 시는 니체의 사상에 영향을 받은 시다. “니체의 아류작이네, 라고 말을 건넸더니, 씩 웃더라”고 했다.

기형도는 왜 그리 철학에 몰두했던 걸까. 자리를 함께한 문학평론가 하응백(휴먼앤북스 대표)씨는 “가족사의 불행 때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셋째 누나의 죽음, 아버지의 병환 등을 운명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식으로 해석하려다 보니 철학에 이르게 됐다는 얘기다.

아버지의 병환은 기형도의 죽음 의식을 부추겼다. 기형도는 대학 1학년 때 군 체험 훈련인 문무대 교육 참가 불가 판정을 받았다. 고혈압 때문이었다. 그의 의학적 사인(死因)인 ‘급성 뇌졸중’으로 이어진 병이다. 김씨는 “아버지의 병환 때문인지 기형도는 병적일 정도로 자신의 요절을 확신했다”고 했다. 구차한 삶을 끔찍하게 여겼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사귀는 여학생들과 관계가 깊어질 때마다 “나를 만나면 불행해진다”며 일방적으로 이별을 통고한 것도 멀지 않은 죽음에 대한 확신 때문이었다. 적어도 그게 김씨의 해석이다.

김씨는 “형도를 당시 동성애의 온상 같았던 종로의 파고다 극장으로 이끌었던 것도 나”라고 소개했다. 시인이 숨을 거둬 동성애자 아니었냐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킨 장소다. 호기심 많던 대학 1학년 시절, 삼청동에서 자취하던 김씨와 함께 우연히 극장을 찾은 시인은 동성애 행위 장면을 목격하고 충격을 받는다. 언젠가 신문사를 그만두면 소설가로 전업할 생각을 하고 취재를 위해 가끔 찾곤 했다. 그래서 극장에서 안타까운 최후을 맞은 것이지 동성애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얘기다.

김씨는 “기형도는 만나는 누구나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인간이었다”고 회고했다. 또 “소설책은 적어도 기형도 부분만큼은 사실에 입각해 썼다”고 했다. 시인의 맨얼굴을 이제야 공개하겠다는 거지만, 시인을 둘러싼 신비가 말끔히 걷힐지는 미지수다. 30년 동안 시인에 대한 뜨거운 사랑 자체가 불가사의이기 때문이다.

글·사진=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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