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었던 심석희의 속내 "4년 전보다 힘들었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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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2018 평창겨울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1000m 결승에서 심석희와 최민정이 레이스 도중 엉켜 넘어지는 장면. [강릉=연합뉴스]

22일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2018 평창겨울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1000m 결승에서 심석희와 최민정이 레이스 도중 엉켜 넘어지는 장면. [강릉=연합뉴스]

"소치보다 평창이 힘들었어요." 몸도 마음도 힘들었지만 그래도 웃었다. 여자 쇼트트랙 대표팀 주장 심석희(21·한국체대)가 평창올림픽을 마친 소감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놨다.

올림픽 직전 코치 폭행 사건 겪어 마음 고생 #개인전 노메달, 계주에선 주장으로 金 이끌어

평창올림픽 개막 전 심석희는 큰 기대를 받았다. 5명의 선수 중 유일하게 올림픽에서 개인전 메달을 따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심석희는 2014 소치 겨울올림픽에서 만 17살의 나이로 개인전과 계주에서 활약하며 금·은·동메달을 각각 1개씩 따냈다. 지난해 세계선수권에서도 3위에 오르며 여전한 기량을 뽐냈다. 최민정(20·성남시청)과 '쌍두마차'를 이룬 여자 대표팀이 4개의 금메달을 모두 휩쓸 수 있으리라는 기대까지 나올 정도였다.

심석희는 올림픽 개막을 불과 3주 앞두고 악재를 겪었다. 심석희는 대표팀 코치로부터 폭행을 당해 선수촌을 잠시 이탈했다. 어렸을 때부터 심석희를 지도하며 소치올림픽에서도 심석희에게 큰 힘을 준 코치였던 만큼 충격은 매우 컸다. 대표팀 선수들의 응원과 올림픽을 향한 의지로 다시 일어난 심석희는 힙겹게 마음을 다잡고 올림픽을 준비했다. 심석희는 "

올림픽에서도 시련이 이어졌다. 500m와 1500m 모두 예선 통과에 실패했다. 특히 주종목인 1500m에서는 넘어지면서 허무하게 탈락했다. 다른 선수들이 쉴 때도 링크에 나와 연습한 심석희는 30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따낸 뒤에야 입가에 미소를 띄웠다. 심석희는 경기 뒤 라커룸에 들어와서는 펑펑 울었다. 그간의 마음 고생을 털어낸 그는 시상식에서 엉덩이를 밀어주는 세리머니를 제안하며 주장다운 모습을 보였다.

심석희는 마지막 개인전인 1000m를 야심차게 준비했다 이번에도 결과는 아쉬웠다. 준준결승과 준결승을 모두 무난하게 통과했지만 결승에서 미끄러졌다. 마지막 바퀴에서 스퍼트를 하다 최민정과 주로가 겹쳐 부딪힌 뒤 둘 다 넘어졌다. 심석희는 실격 판정을 받았고, 최민정은 4위로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심석희는 "민정이가 혹시 다친 게 아닐까 봐 걱정이 돼 '괜찮냐'고 물어봤다. 충돌로 인해 넘어져 안타깝게 생각한다. 마지막 종목이라 최선을 다해 끝까지 탔다"고 했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쇼트트랙 30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한국 심석희(왼쪽부터), 최민정, 김예진, 김아랑, 이유빈이 21일 오후 강원도 평창 메달플라자에서 열린 시상식 시상대에서 세레모니를 하고 있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쇼트트랙 30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한국 심석희(왼쪽부터), 최민정, 김예진, 김아랑, 이유빈이 21일 오후 강원도 평창 메달플라자에서 열린 시상식 시상대에서 세레모니를 하고 있다.

모든 경기를 마친 심석희는 "이 자리까지 잘 살아온 내가 고맙다. 많은 힘을 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고 했다. 그는 "사실 이번 올림픽은 마음을 내려놓고 경기를 했다. 의외의 상황이 많이 나왔는데 많은 응원 덕에 오늘까지 잘 마친 것 같다"고 했다.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땐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다. 심석희는 "나 때문에 고생도 많이 하셨는데 내 편에서 나를 믿어주셔서 감사하다. 부모님 사랑한다"고 했다.

솔직한 마음도 털어놨다. 심석희는 "4년 전보다 평창이 더 힘들었다"고 했다. 그는 "준비 과정이 정말 힘들었다. 제일 힘들었을 때? 솔직히 힘들지 않은 순간을 찾는 게 더 빨랐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이어 "돌아만 갈 수 있다면 1500m 경기로 돌아가고 싶다. 너무 허무하게 끝났다"고 했다. 그래도 심석희는 가장 원했던 계주 금메달을 따내면서 이번 대회를 마무리했다. 주장 심석희의 공이 컸다. 그는 "서로 힘을 내고 뭉쳐야 우리도 잘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모두 잘 따라왔기에 계주에서 좋은 결과를 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심석희는 강릉 출신이다. 쇼트트랙 선수가 되기 위해 이사했지만 어렸을 때까지 살았던 곳이다. 그는 "선수촌에서 경기장으로 이동을 할 때 신기했다. 어렸을 때 다니던 길이고, 살던 집도 보였다. 너무 감사했고, 행복했다"고 말했다. 그는 "내 경기는 끝났지만 대회가 남아서 다른 선수들 응원해주고 싶다. 먹는 걸 좋아해 먹고 싶은 게 많은데… 떡볶이와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다"고 했다.

강릉=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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