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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크 뉴스 증거 확보 위해 국과수와 MOU 맺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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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권순일 중앙선거관리위원장 인터뷰

권순일 중앙선거관리위원장(대법관)이 지난 9일 경기도 과천 선관위 청사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민주공화국 의미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변선구 기자]

권순일 중앙선거관리위원장(대법관)이 지난 9일 경기도 과천 선관위 청사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민주공화국 의미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변선구 기자]

권순일(59)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은 “‘페이크뉴스(가짜뉴스)’를 만드는 것은 민주시민의 덕목이 아니다”라며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허위비방과 허위사실공표를 엄정하게 단속하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MOU(업무협약)를 맺었다”고 밝혔다. 지난 9일 중앙선관위 위원장실에서 중앙일보 기자와 만나 권 위원장은 최근 정치권에서 뜨거운 이슈로 떠오른 가짜뉴스 문제를 진단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에따라 선관위가 앞으로 가짜뉴스 유포 혐의자를 수사기관에 고발하거나 수사의뢰를 할 경우 디지털 증거의 입증력이 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유권자 무서워하는 정치인 뽑고 #정치인이 무서워하는 유권자 돼야 #시민은 민주공화국의 동료이자 #민주공화국 가장 영예로운 직업 #지방선거와 개헌투표 동시 할 경우 #일손 달리면 투표함이라도 옮길 것

현직 대법관이기도 한 권 위원장은 지난해 12월 인사청문회를 거쳐 20대 중앙선관위원장에 취임했다. 중앙선관위원장은 정치적 중립을 지켜며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선거관리 사무를 수행해야 하는 헌법기관이다. 대법원의 재판 업무도 병행하면서 회의체인 중앙선관위를 이끈다. 선거가 있는 달엔 재판 업무가 절반으로 준다. 대법원의 사건 중 국회의원의 당선 무효를 다투는 등 선거와 관련된 사건은 맡지 않는다. 권 위원장은 6·13 지방선거의 시·도시자 예비후보 등록 개시일(2월 13일)을 앞두고 중앙일보와 취임후 첫 언론 인터뷰를 가졌다.

이번 지방선거의 의미를 찾는다면.
“1948년 5월 10일 첫 선거를 치른 이후 올해가 민주선거 70주년이다. 광장 민주주의를 통해 높아진 참여 열기를 ‘동네 민주주의’로 전환시킬 좋은 기회다.”
가짜뉴스나 댓글전쟁 등의 대책은 뭔가.
“극단적인 세력으로 나뉘어 페이크 뉴스로 사회를 혼란스럽게 한다든가, 많은 숫자나 큰 목소리로 상대를 누르려는 것은 민주시민의 덕목에 배치된다. 민주공화국의 의미를 이해하면 그렇게 남을 누르려고 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재임 중에 무엇보다 민주시민교육을 활성화하고 싶은 이유다. 공적인 가치를 위해서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지금의 학교에서는 가르치지 못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13일부터 중앙과 각 시·도에 18개팀 200여 명의 ‘비방·흑색선전 TF’를 가동하며 신고 사이트도 운영한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는 앞으로 어떤 업무협조가 이뤄지나.
“우선 각종 디지털증거물을 수집할 때 국과수가 운영 중인 디지털증거물 인증서비스를 도입할 예정이다. 이는 디지털증거물의 여러 정보를 국과수 인증센터로 전송해 해당 증거물이 조작되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는 서비스이다. 이렇게 되면 증거능력을 인정받기 쉬워진다. 또 앞으로 국과수측과 디지털 증거물 인증서비스 교류와 감정기법 개발 등의 협력 활동을 진행한다.”
정치에 실망해서 투표를 거부하는 사람도 많은데.
“젊은이들이 많이 힘들다. 직장과 집 구하기 힘들고, 애 낳기도 포기한다. 이런 긴급한 문제에는 여야가 없다. 머리를 맞대고 참여하고 숙의하는 게 민주공화국이다. 정치인에게만 맡길 문제가 아니다. 유권자를 무서워하는 정치인을 뽑아야겠지만, 정치인이 무서워하는 유권자가 돼야 한다.”

1980년 22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30여 년간 판사로 일한 그는 법관 시절부터 ‘민주공화국’과 ‘민주시민’에 관심이 높았다. 이날 인터뷰에서도 여러차례 반복해서 강조했다. 권 위원장은 헌법 1조에 나오는 ‘민주공화국’이라는 용어의 역사와 의미를 찾아 4년 넘게 연구했다고 한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헌법과 그 이전의 대동단결선언(조소앙), 플라톤과 키케로의 책을 읽으며 민주공화국의 의미를 찾았다고 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공부한 내용으로 ‘공화국을 찾아서’(가제)라는 책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권 위원장은 “우리가 민주공화국의 구성원인데, 어찌보면 우리의 뿌리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시민들은 모두 민주공화국의 동료”라고 했다. 이어 “마지막 공직인 선관위원장을 마치면 민주공화국의 가장 영예스러운 직업인 ‘시민’으로 돌아가겠다”고 덧붙였다.

공화제를 연구한 이유는.
“판사 생활을 할 때부터 정의와 자유, 평등, 민주주의, 공화국 등의 용어를 제대로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 역사에서는 이미 1910년대에 ‘주권민유’ ‘민주공화제’ 등의 개념이 등장한다. 최근 국민의 고양된 정치의식에도 그런 사상이 녹아 있다고 생각한다. 아시아에서 민주공화국이라는 용어를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사용했다. 자부심을 느낄만한 일이다.”
한국의 선거관리 수준은 세계적으로 어떤 수준인가.
“지난해 우리나라는 대통령도 법 아래에 있음을 보여줬다. 성공한 민주주의라는 국제적인 이미지가 있다. 우리의 선거관리는 세계적으로 정평이 나서 하나의 브랜드가 됐다. 미국보다 잘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정하고 효율적인 이 과정이 새로운 한류가 되길 바란다. 실제로 우리 선거를 세계 각지에서 참관하러 온다.”

권 위원장은 여당과 제1야당에 유리한 기초의회 ‘2인 선거구’ 논의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을 밝혔다. 그는 “전국적인 정당에 의해 기초의회가 좌우되면 지역 주민의 삶과 자치에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선관위는 이번 선거에서 빅데이터를 활용해 지역 유권자의 관심사를 정리한 ‘동네 공약 지도’ 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권 위원장은 개헌과 관련해서는 “기존의 헌법은 30년간 제 역할을 잘 해왔다. 이제 좀 더 성숙한 민주주의를 위해 여야 모두 개헌의 필요성에는 공감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방선거와 개헌 국민투표가 동시에 실시될 경우 선관위의 업무가 너무 가중되는 것 아니냐고 묻자 “선관위는 조기 대선도 잘 치러냈고 세계적인 능력을 갖췄다. 만약 일손이 달리면 위원장이라도 투표함을 옮길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김승현 기자 s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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