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김정은이 던진 남북 정상회담, 남·북·미 수싸움 시작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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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청와대를 방문한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과 접견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청와대를 방문한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과 접견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정상회담 승부수를 띄우자 남·북·미 간 치열한 수싸움이 시작됐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은 지난 10일 문재인 대통령에게 김정은의 초청 의사를 전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앞으로 여건을 만들어 성사시키자”고 답했다.
 여기서 문 대통령이 "가겠다"고 흔쾌히 말하지 못하고 "여건을 만들자"고 한 데엔 고민이 담겨있다. 여건 조성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정상회담에 응할 수 있다면서도 “어느 정도의 성과가 담보돼야 할 것”이라고 전제했다. 또 “북핵 문제가 해결돼야 남북 관계가 개선될 수 있다”고도 했다.

 하지만 북한은 “핵은 흥정 대상이 아니다”는 입장을 반복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은 11일 문 대통령의 북한 고위급대표단 접견 소식을 전하면서도 김정은이 정상회담을 제안했다는 내용은 뺐다. 국제회의 등에서 북한 인사들과 수차례 접촉했던 한 외교 소식통은 “핵 문제는 한국과 논할 것이 아니고 미국과 핵보유국으로서 군축 협상을 한다는 두 가지가 북한의 일관된 입장”이라며 “그러면서도 제재로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되자 ‘지금 상황에서 한국의 제안도 나쁘진 않은데?’라는 반응을 보여 왔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10일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여자 예선전을 관람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사진 청와대]

문재인 대통령과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10일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여자 예선전을 관람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사진 청와대]

북한이 한국을 통해 '제재 숨통'을 뚫어보려는 조짐이 보이자 미국은 대화 문턱 높이기 전략으로 맞서는 형국이다. “일단 만나서 날씨 이야기라도 하자”(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 지난해 12월12일)에서 “어떤 협상이나 대화도 북한이 핵과 미사일 포기를 위한 구체적인 조치를 취해야 시작할 수 있다”(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 9일)는 강경한 입장으로 다시 돌아갔다.
 정상회담 제안에 대한 반응도 싸늘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은 9일 중앙일보의 입장 문의에 “한국과 긴밀히 접촉 중”이라며 “문 대통령이 밝혔듯이 남북 관계의 개선은 북한 핵 프로그램을 해결하는 것과 별개로 진전될 수 없다”고 답했다.
 게다가 정상회담의 첫 걸림돌로 여겨지는 올림픽 후 한미 연합군사 훈련 실시에 대해서도 완고한 입장이다. 펜스 미 부통령은 방한 중인 9일 미 N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문 대통령이 군사 옵션을 사용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느냐"는 질문에 “트럼프 대통령은 연합 군사훈련을 올림픽 이후로 연기했다. 알다시피 문 대통령은 이에 사의를 표했다”며 “하지만 명확한 것은 우리는 조국 수호를 위해 필요한 어떤 조치도 취할 완벽한 준비가 돼 있다는 것”이라고 답했다. 군사 옵션에 있어 이번 같은 예외는 더 이상 없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정부로선 현재 북한이 한국과의 대화에만 관심을 보이는 것이 사실상 유일한 지렛대다. 이를 의미 있는 남북 대화로 연결하려면 주변국 특히 미국과의 공고한 협력 구도를 만드는 것이 필수불가결의 조건이다. 신각수 전 주일 대사는 “닫혀 있던 대화를 위해 마중물을 넣어주는 것은 불가피했지만, 이제는 기본으로 돌아가 북한 대 한·미·중·일·러라는 1대5 구도를 만들어야 한다”며 “이 과정에서 비핵화를 위한 한·미 간 공조에 한 치의 오차도 없다는 신뢰를 미측으로부터 확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유지혜·박유미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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